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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Mar 31. 2021

당직반차 알차게 쓰기

숲에서 일하고 노는 그린이의 회사살이 18

 당직을 마치고 다음날, 집순이인 나는 고민 끝에 이 맑고 따뜻한 날을 평범하게 보낼 수 없어 가까운 바다로 떠났다. 나를 위해 햇살 닮은 한복을 꺼내 입고 횡성에서 50분을 즐겁게 달렸다. 평소 운전을 힘들어하던 나인데 말이다. 파란 하늘이 반가웠다. 깨끗한 하늘이란 것도 좋았고, 뭣보다 근무시간에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드라이빙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비빔국수를 먹으러 갔다. 번화가에 있는 곳도 아니고 유명한 곳도 아니다. 조용한 동네 음식점이었다. 혼밥을 기피하는 나이지만 비빔국수를 기다림이 행복했다. 평소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사와 다르게,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식사는 여유로웠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사뿐히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여전히 황량한 일터와는 다르게 푸릇푸릇하고 봄 느낌이 물씬 나는 경관에 걸음걸음마다 감탄이 나왔다. 관사에서 청소하고 책을 읽는 것도 쉼이 되었겠지만   용기 내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면 지금, 이곳에서 경험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지도 않았을 거다. 익숙한 곳을 떠나 만나는 행복을 몰랐을 테니.      


이후 예쁘고 유명한 카페가 밀집된 곳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으리라 생각된 곳에 자리한 카페에 들어와 앉았다. 평소라면 여전히 근무하고 있을 시간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한방차를 마시며 글을 쓴다. 여러 주제로 글을 써놓았지만 마음이 외로워 정돈할 힘없는 글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당직근무가 있던 날 치유 장비 교육을 하면서 HRV 자율신경균형검사를 했다. 자율 신경의 기능 저하로 인체 조절 능력이 매우 저하되었으며, 부교감 신경이 과활성화된 상태로 우울함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스트레스 저항도와 지수는 좋은 상태이지만 피로도가 최하점 150에 150이 나왔다. 기계 또한 맹신하지 않는지라 오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남도 알아채는 나의 우울감과 피로감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되는 듯하다.

눈물도 마르고 노력할 힘도 사라져버린 요즘이었다, 여전히 목마르고 물 길 힘조차 없다. 그런 나에게 익숙한 찬양 멜로디와 함께 잠시 쉬어가는 당직반차 시간은 숨통이 되는 듯하다. 코로나로 인해 이런 시간이 자유롭지 않지만 지쳐가는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망설이며 찾아온 낯선 동네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신선하고, 메마른 마음을 조금 어루만지는 듯하다. 이런 시간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언제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방 회복할 거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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