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숲에서 일하고 노는 그린이의 회사살이 20

by Green

일상적이지만 찰나의 순간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

언제든지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순간을 놓치고 나서 알게 되는 것들. 혹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들. 그것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일 때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또한 영원하지 않은 순간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삶'처럼.



‘지난가을 황금빛으로 물든 잎을 떨군 일본잎갈나무는 왜 아직 초록빛 새잎을 내지 않을까?’ 사무실에 앉아 여전히 가지 사이로 뻥뻥 뚫린 산을 썩, 부족하게 보았다. 숲 속으로 들어가서야 알았다. 어느새 봄이 오고 있었다. 이미 왔으나 오지 않은 듯한 봄 숲에서 찰나의 순간을 만났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인 겨울 숲이 푸르러진 게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닐 거다. 둔해서 그 사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때, 그들은 새로운 잎과 꽃을 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아쉬운 놀람 뒤로 자세히 보게 된 어린 움틈은 대견하고 신비했다. 무수한 잎을 뽐내며 성장한 모습이 익숙한 나에게 작은 움틈은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거쳐야 하는 소중한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찰나. 곧 있으면 그 작은 잎, 꽃봉오리는 순식간에 펼쳐질 거다. 그 시간을 위해 보이지 않아도 오랜 시간 애쓰고 있는 새 잎을 보며 어느새 성장해 있을 나를 기대해본다. 새로운 환경에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건강한 잎을 내기 위해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며 에너지를 모으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말이지만) 역량을 키우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문득 푸르러진 내가 보일 거라고.


봄이 왔다고 반가워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지나가는 겨울이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 눈이 내렸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봄을 만났는데 말이다. 일기예보엔 분명 비 소식이었는데, 횡성 산자락에는 거센 눈보라가 일었다. 그러다 해를 가리던 구름이 지나가고 밝은 햇살 아래 펑펑 내리는 을 보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눈부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신선했다. 보송보송해 보이는 눈은 곧 땅에 닿으며 빗소리를 냈다. 담을 수 없는 그 풍경과 소리로 빠져들었다. 이내 조금 있던 눈 구름도 지나갔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겨울 하늘에서 찰나의 순간을 만났다.

촉촉해진 회랑 지붕에 머물던 눈비가 살랑살랑 하얗게 피어올랐다. 기화되고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모습이었다.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게 자신을 펼치는 듯했다. 개발자가 참여해도 즐겁고, 이 시대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으나, 그저 빠른 시간 안에 동기부여되지 않는 특정 콘텐츠(걷기 그만!!!)를 넣은 결과물을 가져오라 하는 상황 때문에 회사생활에 흥미를 잃어가는 요즘이었다. 그런 때에,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며 말을 걸었다.

아쉬워하지만 말고 너를 표현해!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체력이 부족해 금방 지쳐가는 요즘,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이 들면 젊음을 회상하며 우울해지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이 듦이 슬픈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적건 많건,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찰나의 순간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이런 찰나의 순간을 나이가 들어도 계속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젊음이 사라져도 매일매일 아름다운 순간이 늘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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