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보려고요, 우울증 약

숲에서 일하고 노는 그린이의 회사살이 23

by Green


"심한 우울증은 아니지만 약을 권하는 수준 이상입니다."


마음이 조금 힘든 것 같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한번 가볼까?’ 하면서 오래 고민하고 망설이다 방문했다. ‘어떻게 오셨냐’는 말을 시작으로 (나름) 담담하게 짧은 대화를 나눴고 검사를 제안받았다. 검사를 하면서 이 정도면 별 이상 없다고 말할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의사는 내 짐작과는 다른 말을 했다. ‘한 번 가볼까 했던 생각은 정말 잘한 거고, 병원에 왔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대화를 좀 더 나눈 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게 되는 근거를 듣고 약을 받았다.



"요즘 시대에 우울증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숲에서 치유 일을 하면서 우울증이라니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니까. 남들도 우울증 갖고 살지만 병원을 가지 않아서 모를 뿐이라고. 그러나 남들과 같은 상황이 아님을 느끼는 요즘이다. 약해졌다. 남들보다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기 때문에 종종 우울증인가? 싶을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훌훌 털고 스스로 일어났다. 그런 내가 병원에 갔고 약을 받았다. ‘멘탈 싸움이야, 정신 차려!’ 싶다가도 가만히 허공을 보며 웃지 못하고 매일같이 회사에서 통곡하는 내 모습은 '어서 인정하라'는 듯하다.


나만 몰랐나 보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이전 팀원들은 요새 많이 힘드냐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달라진 내 모습에 안부를 묻는다. 그때마다 여러 상황이 스쳐가며 그중에 뭐라 대답할지 고르다가, “음 좀 그래요.” 하고 넘어간다. 원인을 몰라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다. 누군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더라면 어떤 점이 힘든지 알지 못한 채, 생각할 겨를 없이 피폐해졌을 거다. 원치 않게 팀이 바뀌고 텃세 당하듯 주어진 기피 업무들, 더불어 나를 부정하는 팀장과 함께 일하는 나날들이 힘겨웠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도 힘들 텐데, 어떻게 내 이야기를 하나 하면서 풀어내지 못한 게 우울증을 키웠다.


약을 받고도 2주 동안 먹지 않았다. 먹는 순간 정신이 약하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지치는 일과 팀장의 말로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는 ‘약을 먹어야겠다.’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약을 먹나’하며 매일 밤 먹으라는 약을 외면했다. 그런 내게 의사 선생님은 부드럽고도 확실하게 말했다. 인정하고 약을 먹어야 하루빨리 나아진다고. 위 기능이 약해지면 소화하는 게 어려워 약을 먹듯이, 뇌 기능이 약해져서 일상생활이 쉽지 않으니 약을 먹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거부감이 덜해졌다. 우울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었다.



“네, 먹어볼게요.”


그래, 약이 나쁘지 않구나. 먹어볼 만하겠구나. 그래도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약을 먹고 내 기분과 생활패턴은 나아질 수 있지만, 나를 어렵게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약 먹는 것을 다시 망설인다.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으면서 대우받고 싶어 하는 팀장은 나쁘니까. 철저한 개인주의 속에 자신의 것을 챙기느라 다른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모른 채 하는 팀원에게 마음 놓을 수 없으니까. ‘휴직을 할까?’ 몸도 맘도 망가져 가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잘못을 증명하고 싶어 휴직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러나 그러기엔 이 일을 좋아한다. 결국 약을 먹고 잔인한 상황에서 일하는 걸 택할 것 같다. 마치 진통제처럼. 나, 그래도 괜찮을까?


이 와중에 예쁜 나의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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