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하는 대신 타파하라

숲에서 일하고 노는 그린이의 회사살이 26

by Green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 문구다. 유명한 영화이지만 병가를 낸 오늘에야 그 명작을 보았다. “카르페 디엠”이란 경구로 유명한 이 영화 내내 생각나는 대사는 “체념하는 대신 타파하라”였다. 영화는 내게 ‘나를 드러내도 괜찮아’보다 ‘나의 소리로 살아’를 깨닫게 했다. 내가 본 키팅선생님은 학생들이 가진 다양한 결각을 수용하고, 잠재된 내면의 소리를 겉으로 표현해내게 도왔다.


영화 속에서 키팅을 만난 학생 중 연기를 꿈꾸는 닐은 자신의 외침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더 이상의 외침을 포기했다. 그 과정을 보는 마음이 미여졌다. 보통(정확히는 편하게 사회에 맞춰줬으면 하는) 모습을 강요하는 사회와 그 사회에서 익숙하고 무난한 게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지위 높은 인물들 때문에 죽음이 생겼다고 본다.



치유팀으로 바뀌고 남들이 기피하는 업무가 내게로 왔다. 발령받기 전 이미 기존 직원들은 맡고 싶은 업무를 하나씩 골라가졌다. 그리고 남은(기피) 업무가 내게 온 것이다. 2월 1일 자 발령, 2월 2일에 팀장을 찾아가 부당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듣게 된 말은 ‘기존 직원에 대한 대우다. 너는 치유업무 뭘 안다고 고를 수 있냐’였다. 자발로 희생해서 치유팀으로 이동하겠다고 한 나의 모습이 멍청했음을 스스로 느낀 팀장의 변론이었다. 인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랑하는 교육 일을 내려놓고 온 사람에게 한 말이 그 수준이라니.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 겪어봤을 수 있다. 흔할 수 있지만 흔하다고 해서 괜찮은 일은 아니다. 인사이동과 업무분장으로부터 우울증은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기에 비슷한 주제의 문제로 자살한 공공기관 직원, 공무원 소식도 이슈되었다. 그건 흔해져서는 안 되는 일인 거다.


발령 하루 만에 언쟁이 생긴 소식을 들은 교육팀원들은 현 치유팀장에게 잘못한 건 없지만 죄송하다고 눈 딱 감고 말하라 했다. 난 못한다. 안 한다. 혼자 흥분해서 무례한 말을 내뱉을 때 묵묵히 들은 건 팀장이 아닌 나였다. 5급 주임이. 그 뒤로 그녀에게 웃으며 다가가도, 솔직한 생각을 나눠도 부정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직원일 뿐이었다. 이미 본인의 생각대로 판단해버린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랴.


나는 이제 미련이 없다. 지금까지도 최선으로 일했고 앞으로도 회사에 속해있는 동안 맡은 일은 평균 이상으로 해낼 테니까. 그러나 부당함을 혼자 삭이지는 않으려 한다. 지쳐서 소리 낼 힘, 싸울 힘이 없었지만 이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건강을 찾을 거다. 그리고 나를 찾을 거다.

독을 지닌 족도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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