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일하고 노는 그린이의 회사살이 29
간혹 잊고 있다.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 숲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존재가 누구인지, 잠시 놀러 온 자(혹은 원치 않는 침입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과연 '벌레'라고 불린, 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였을까, 투덜대는 인간이었을까.
숲에 온 고객들로 가장 많이 듣는 민원은 벌레가 많다는 이야기다. 숲에 왔으니 당연한 것이다. 인공적으로 가꿔진 곳이 아닌 사람을 위해 필요한 구조물이 세 들어 있는 숲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고 마땅히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에겐 못마땅한 장소이다.
숲에서 벌레라 불리는 곤충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가령 어두운 산길을 가다 마주친 고라니를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몇 달 전 야근 후 관사로 내려가는 길에 새끼 고라니를 만났다. 새까만 하늘과 도로 위에 여린 아기 고라니가 불쑥 나타났고 본인을 향해 다가오는 차를 보고도 유유히 걷고 있었다. 알아서 피하겠지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도를 줄였다. 결국 ‘통-’ 부딪치고 말았다. 놀라서 도망간 고라니를 보고는 꽤 오래 죄책감에 시달렸다. 차가 망가졌을 거란 걱정은 한참 뒤 고라니를 만났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이 대신했다. 오래도록 고라니의 내상을 걱정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차에 흠집 하나 없는 걸 보면 고라니도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다.
처진 어깨로 힘없이 바닥을 보며 걷다 보면 애꿎게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은 곤충들이 보인다. 도롱뇽,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멀리서 보아도 바닥에 눌린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애꿎은 죽음에 마음이 일렁인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이지만 사람을 위한 길이기 전, 야생동물의 생활터전이다. 그런 곳에 일하고 있고, 그곳을 찾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명확히 알아야 한다. 숲의 주인은 그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