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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Nov 05. 2021

병가, 새로운 시작

 휴직 고민 끝에 병가를 냈다. 2달간 회사를 벗어나 자유를 얻은 내게 사람들은 무엇을 할 건지 묻는다. 특별한 계획 없이 쉬는 것이 내 바람이었기에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그저,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주변의 이야기, 누구보다 나를 가장 소중히 생각하라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살아갈 뿐. 


휴직을 말리던 사람도 있었고, 휴직을 하더라도 정신과질병이 아닌 다른 것으로 하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우울병 트라우마로 2달 이상의 비정기적 치료와 쉼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병가를 신청했다. 그게 가장 빨리, 안전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다른 부작용을 생각할 겨를은 없다. 2021년이 두 달 남은 시기라 맡은 사업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고, 구체적인 설명을 적은 인수인계서는 A4 한 장에 정리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팀원들을 향한 괜한 미안함과 쓸데없는 책임감은 병원에서 검사를 하던 중이건 주말이건 나를 일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거라 생각했던 회사에서는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왔다. 그 뒤로는 저기 먼 나주에서 1박 2일 출장이 있었다. 청소년의 감성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건으로 경진대회 일정이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을 되살리고자 했고, 애정하는 식물과 글쓰기를 매체로 한 단위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지쳐버린 육체와 업무 외로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무릅쓰고 소명 또는 자부심만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제 정말 공식적인 근무는 끝났다. 그러나 계속 연락 올 것 같은 기분이다. 엄마는 전화번호를 바꾸란다. 


최근 대전시청 공무원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사건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의 상황에 공감하며, 참 많이 고생했겠구나, 마음이 아렸다. 그의 부모가 '직장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나 또한 같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 말에 '걔네들 절대 몰라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고, 잘못을 은폐하는 것을 가만히 보지 못하던 내가 지금은 피해버리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 왜 피해본 사람이 숨느냐고? 누군가는 자신이 없어서일 수 있겠지만, 아마 더 많은 상처를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상해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너무나 쉽게, '정신적인 문제인데 그걸 못 이기냐'라던가, '네가 왜 피하냐'는 속 모르는 소리는 멈춰주길 바란다. 말하는 이의 의도는 알지만, 듣는 이의 마음도 헤아려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으니까. 


남들은 꽃피는 계절이 아니라 하지만 자신 있게 자신을 드러내며 시선을 끄는 향기 나는 금목서


인생이라는 거 그렇게 공평하지 않아. 평생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인 사람도 있고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어. 


 최근 종영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나온 대사다. 하고자 하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흠이 있어 보이나, 사정이 있는 것이 모두의 삶이니까. 


이제 당분간은 숲 속 회사 생각을 멈추고 나의 무의식과 시각을 나눠보려 한다. 내 영역을 확장시키는 과정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다 알지 못하는 무의식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지 기록하면서, 문학치료 과정에서 바라보는 영화의 해석을 기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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