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좌절에 빠져있던 그린이 구출기 3
일상에서 벗어나면 보이는 것이 있다.
영국으로 떠나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을 벗어났을 때 나는 연약하고도 강한 나를 보았다.
라오스로 떠나면서 나의 일상을 벗어나 꽁꽁 숨어있던 나를 다시 찾고 숨 쉬기 바랐다.
영국에서 시간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나를 표현하는 법을 익혔고 다름을 인정하는 훈련을 하였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했다. 5개월 뒤, 한국에 돌아오니 꽤나 무거운 압박이 나의 숨통을 조여왔다. 여전히 다양한 삶을 보고 경험하고 싶은 나에게 그럴 시기는 지났다는 거짓말이 다가왔다. 무엇이 날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원치 않는 직무라도 취업을 하려고 애썼다. 경험 쌓자고 이곳저곳 지원하면서 없는 에너지를 태웠고 실패가 쌓이고 쌓여 내 마음 깊은 속에 찌꺼기가 되어 남았다. 마음속 찌꺼기가 쌓일 만큼 쌓이자 눈물이 되어 흘러넘쳤다. 미뤄왔던 행복을 미루면서 나의 청춘을 보낼 수 없었다. 숨 쉬기도 미룰 수 없듯,
여행지로 라오스를 택한 이유는 관광도 아니고 휴양도 아니고 내가 살아있음을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계획 없는 이 여행(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껴보고 싶었다.
1. 두려움 많은 나를 깨는 도전
2. 계속되는 일정 변경과 그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는 나
3. 기분은 상황이 아닌 내가 만드는 것
4. 특별한 꿈, 바람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하루
LAOS, 방비엥에 도착해서 카약킹과 짚라인을 포함해 몇 가지 액티비티를 하였다.
힘들기만 할 거라 생각했던 카약킹은 멋드러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어 행복하겠다"
나와 같은 카약에 탄 현지 가이드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수영을 할 수 있고 멋진 풍경을 날마다 볼 수 있어 나의 직업에 만족해, 난 행복한 사람이야"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하기보다 그저 취업하여 안정적인 삶을 바라는 사회에서 도망 온 나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카약킹이 내게 넓은 시각과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고 별 볼일 없게 여겼던 것이 내게 힘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는데 내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익숙한 것만 쫓고 있지는 않았을까.
카약의 감동을 이어 짚라인을 타러 갔다. 혼자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평소에 하지 못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았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슈퍼맨이 되었다.
떠나는 것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많은 내가 어쩌면 머뭇거리다 떠나지 못했을 라오스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의 틀을 깼다는 것에 훨훨 나는 기분... 아니 정말로 사방이 틔인 라오스 하늘을 날았다.
마지막 코스였던 블루라군. 다이빙을 하러, 푸른 물 색을 보러 많은 여행객이 찾아온다. 나도 이곳에 오면 다이빙을 꼭 해보리라 다짐했다.
현실은 타잔처럼 멋지게 뛰어내리는 사람을 보며 박수 보내는 방청객이었다. 차가운 물을 핑계 삼아, 겁쟁이인 나를 알기에,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창피해서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나는 라오스까지 와서 어린아이도 하는 다이빙을 못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많은 나를 깨기 위해 제일 높은 다이빙 대에 올랐다. 호기롭게 올라왔으나 1초를 뛰기 위해 1분을 망설였다.
"내가 망설여서 다른 사람들이 답답해하겠지?"
"멋지게 뛴 사람들과 차원이 다르게 볼품없을 텐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 자신도 너무나 뛰고 싶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두려움을 깨는 것. 그것을 위해 올라갔으나 그곳에서도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응원하며 카운트를 세는데, 나의 카운트와는 맞지 않았다. 당사자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계속 뛰라 한다.
사람들의 요구, 응원 혹은 비난 속에서 나는 나의 카운트를 찾아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뛰었다. 두려워 망설이는 나를 푸른 물구덩이에 빠트렸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은 볼품없었지만 한 단계 더 멋있어진 듯한 나를 칭찬했다.
누구의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절한 시기에 맞춰하는 것. 그 또한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