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둔 담을 넘어 흘러가도 나는 안전하다.
이번 라오스행은 준비할 새 없이 떠났기에 여행을 준비하며 생기는 기대감은 낮았지만 '떠남' 자체가 주는 설렘이 가득했다. 치밀한 계획과 탄탄한 준비 없는 이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다.
역시나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 "여행"다웠다. 익숙함을 떠나 새로움에 맞닥트리는 것, 그 상황을 헤쳐가며 배우는 것, 그 여행다움.
취미가 계획 세우기였던 나에게 계획 없는 여행은 갑자기 다이빙 대에 올라서 푸른 물구덩이로 빠지는 일과 같다. 낯설고 두려웠지만 호기롭게 다이빙대로 올랐던 나에게 응원이 쏟아졌듯이 나의 여행도 호기롭게 시작되었고 모든 과정에서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여러 변수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平安(평안)을 찾았다.
방비엥에서 세 번째 날, 여기까지 왔으니 버기카(Buggy-car)를 타보라는 숙소 사장님의 권유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하는 것을 늦추었다. 그러나 막상 버기카를 타려 하니 망설여졌다.
'나 혼자? 어떻게 부아아 앙-하고 다닐 수 있겠어...'
'너무 피곤한데, 잠이나 잘까?'
'먼지도 엄청 먹는다던데...'
이건 핑계였다. 사실 계획에 없던 것을 즉각 반영하여 '잘'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버기카 타본 경험도 없는 내가 갑자기 시도했다가 잘하지 못했다(?)는 수치심, 불만족, 불편함 등 부정적인 감정이 엄습할 까 봐..
최종면접에서 '우리랑 일할 거죠?'라는 질문에 뜸을 들이고 (원해서 지원했으면서)'내가 해보지 않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저들을 실망시키진 않을까?'같은 질문을 스스로 되뇌다 면접관을 지치게 만든 적이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자신 없음' 때문에 나는 '변화'를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또다시 제자리에 있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새로이 다짐하며 뜨끈한 까오삐약을 들이켰다. 해보자! 그렇게 나는 방비엥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고 왔다. 불안함을 떨치고 나니 나를 익숙함에 가두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다.
시크릿라군에 도착했다. 블루라군1보다 푸르고 한적한 시크릿라군이 내게 들어오라고 유혹했다. 수영하지 않을 생각으로 수영복을 챙겨가지 않았기에 라오스에 챙겨간 마지막 깨끗한 옷을 입고 입수했다. 퐁당
계획에 없던 입수와 버기카로 인해 축축하게 먼지 먹은 옷을 입고 옷 가게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꾀죄죄하지만 꽤 멋진 나에게 으쓱해 보였다. 하나하나 계획한 순간은 아니었지만 막상 해보니 한 치 앞을 몰라 불안한 것이 아닌,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이후로도 루앙프라방 가는 미니밴 고장으로 찻길을 걸어가고, 잘못 마신 물로 인해 탈이 나면서 모든 일정은 틀어졌다. 잃어버린 이틀을 보상하기 위해 출국 당일까지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무모한 짓도 했다.(루앙프라방에서 출국할 비엔티안까지는 10시간 거리다.) 그 속에서 난 흐르는 대로 흘러가 보기로 작정했다. 계속 변경되는 일정에 투덜거리기 딱 좋은 날들이었지만 '이 여행, 정말 좋다'는 평안이 찾아왔다.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그것이 오히려 유익할 때가 있다. 지금도 안정적인 상황에서 불안해하며 계획 세우는 나를 버리는 연습 중이다.
나의 생각과 계획대로 흘러가는 여행(삶)을 산다면 하나하나 딱딱 들어맞는 것에 쾌감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잔잔한 호수의 고요한 수면 아래 있는 탁한(혹은 생명력 없는) 물과 같지 않을까. 고요함을 유지하고 싶은 잔잔한 호수는 돌이 던져질까 불안해하고 요동치는 물결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담을 벗어나 흘러갈 때 더욱 맑고 생명력 있는 모습이 된다. 그러니 '괜찮다'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본다. 흘러가며 이 바위도 만나고, 저 나무도 만나고, 급하게도 흘러보고 천천히도 흘러보자고.
내 계획과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안전해.
나의 좁은 시각에 머물러 계획이 무산될 때마다 속상해하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