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 Feb 18. 2023

막상 떠나려니...

순환근무 시작

인사발령으로 싱숭생숭 뒤숭숭한 한 주였다. 다음 달부터는 '군'이 아닌 '시'에서 일한다. 간절히 그려왔던 도시 생활인데, 뭔가 망설여진다. 




불과 2달 전, 기관 대 기관으로 인사교류 차 파견근무가 예정되어 있었다. 역대 최고의 관심을 받은 파견 건이었고 나의 간절함이 닿은 건지 최종 선발되었다. 파견예정인 회사는 이 기회를 알기 전부터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회사였다. 학회 참석으로 우연히 방문한 그곳은 넓고 알록달록 아름다워서 가슴 뛰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마음을 갖고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에 교류 기회가 왔고, 영하 20도의 시골바닥을 뜨고 싶던 나로서는 매우 간절했다. 여러 요소가 내게 적합했다. 학력이며 자격이며 상이며 관심이며... 교만하게는 내가 안 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거기에 간절함까지 있었으니 파견일자가 다가오는 것이 하루하루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1월이 지나고 2월인 지금도 첩첩산중 노루와 멧돼지가 뛰노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파견이 취소되었기에. 내가 들뜬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어도 어떻게 그런 회사가 있냐고 말한다. 맞다. 그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최종선발을 해놓고 없던 일이 되었다. 이유는 그 회사에서도 나와 같이 파견할 직원을 선발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사정으로 기관 간의 신뢰도 저버리고, 회사의 아주 작은 일부이지만 한 사람을 들었다 놨다. 물론 남에게는 '일을 잃은 것도 아니고 뭐 그렇게 대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게는 간절했다. 이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퇴근 후 즐길 수 있는 생활은 곧 내 미래였고, 내 건강이었다. 내가 드디어 아프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크나큰 기대가 썰물처럼 빠지고 두 달 만에 정말 다시 짐을 싸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설레지 않는다. 오히려 두렵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팀원들과 익숙한 일, 정든 자리를 지키고 싶다. 마침 나를 억세게 만들던 팀장도 떠나는 상황이라 나쁠 게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떠나는 것 같다. 더 이상 아프도록 춥지 않은 지역으로, 퇴근 후 운동할 수 있고, 무엇이든 식사를 챙길 수 있는 곳으로, 집과 학교와도 가까운 지역으로 간다. 그럼에도 힘을 내어야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두려움, 책임감.


새로 적응한다는 두려움, 그로 인해 얻는 기회에 비해 감당할 것이 두려운 거다. 파견은 여행과 같은 개념이었다. 떠났다가 돌아올 곳이 있었다. 하나의 행복한 경험으로 남는 거였다면, 지금은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새로운 기쁨도 분명 있겠지만 떠나기 전인 지금은 마치 심부름이 주어진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잘 해낼 거고 도와주는 이도 있겠지만 막연히 걱정스럽고 멍해지는 순간이다. 


이 모든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는 책임. 아마도 이번 인사이동에는 두 달 전 파견이 취소된 이유로 과거에 어필한 희망사항을 반영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난날에 내가 다른 다른 곳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어느 곳도 원치 않았다면? 새로운 곳에서 겪는 어떤 일도 내가 자초한 것이라는 그런 비합리적인 생각이 눌렀다. 그러나 안다. 터무니없이 무조건적으로 반영하진 않았을 거고. 또한 과거였어도 그것은 분명 이유 있는 바람이었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사위질빵'의 눈에 둘려 쌓인 열매


이제는 끌려가지 말고 기쁘게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채우는 중이다. 좋은 점들을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이 축하한다는 말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잘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깨닫게 될 거다. 파견이 취소되고 덕분에 새로 떠나온 곳에서의 일들은 나를 위한 큰 그림일 거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위질빵만 같아라!

작가의 이전글 안녕하세요? 저는 이 숲의 '매력이'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