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시선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시점이 언제인가에 따라 '매우 좋아한다 ~ 매우 싫어한다'까지 다양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책을 뺏어야 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로 탐독했던 순간도 있고, 글자만 보면 토할 것 같던 순간도 있다. 특히 국가고시를 치른 직후, 석사논문을 마친 직후에는 어떠한 글자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책을 펼쳐 검은 글씨를 오래 마주하기 어려워했을 뿐, 책을 항상 좋아하기는 했다. 이사를 하면 가장 먼저 근처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았고,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일부로 약속 장소에 여유롭게 도착해서 근처의 서점을 들리곤 했다.
'책 구경하기'는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이자, 지금도 여전히 가장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취미이다. 책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 자체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生)이 뽀글뽀글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곤 한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바라보며 걷노라면, 나에게 특별한 시선을 보내는 책과 만나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 그 책을 펼쳐보면, 그것은 대부분이 따듯했고, 위로이자 용기이자 칭찬이었다. 가끔은 차가웠지만, 깨달음을 주는 질책이었다.
기록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인위적인 노력이 싫다는 나의 가치관에 따라 책과 나의 만남을 기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굳이 인위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내 세포 어딘가에 저장되도록 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왜 기록을 남기려 하는가. 내 사고를 확장시키고 싶었고, 문득, 그냥, 이게 자연스러웠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프로이트의 <신비스런 글쓰기판에 관한 소고>가 레퍼런스처럼 띄워졌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몇 번 있었을 텐데(분명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때는 있었다), 이제야 역치를 넘겨 글쓰기라는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고, 내 세포 어딘가에 있었으나 사용되지 못했던 근거를 꺼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If I distrust my memory - neurotics, as we know, do so to a remarkable extent, but normal people have every reason for doing so as well - I am able to supplement and guarantee its working by making a note in writing. In that case the surface upon which this note is preserved, the pocket-book or sheet of paper, is as it were a materialized portion of my mnemic apparatus, the rest of which I carry about with me invisible. I have only to bear in mind the place where this "memory" has been deposited and I can then "reproduce" it at any time I like, with the certainty that it will have remained unaltered and so have escaped the possible distortions to which it might have been subjected in my actual memory.
글로 적어둠으로써 기억력의 작용을 보완하고 보증할 수 있으며, 그 경우 기록이 담겨 있는 지면은 기억장치가 물질화된 부분이다. - 상기 내용 발췌
A Note upon the “Mystic Writing Pad” (Sigmund Freud,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