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화로 읽는 정서 이상 징후들
어느 날부터인가
늘 아침 일찍 일어나던 아이가 이불 속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그저 눈만 뜨고 누워 있기만 합니다.
분명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자꾸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혹은
늘 가족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이야기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기 시작합니다.
짧은 질문에 “몰라”, “아니야”라고만 대답하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묻습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하지만 정작 아이는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의 변화는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은
먼저 ‘행동의 변화’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바로 무기력함과 의욕 상실, 그리고 의사소통의 단절입니다.
갑자기 아이가
좋아하던 놀이에 흥미를 잃고
밥을 대충 먹거나 손도 대지 않고
하루 종일 멍하니 누워 있거나
텔레비전, 스마트폰을 무의미하게 반복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면
그건 단순한 ‘게으름’이나 ‘사춘기’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의 내면에 이미 작은 균열이 생겼다는 조짐일 수 있습니다.
말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이가 표현의 동기를 잃었다는 신호입니다.
내가 말해봤자 들어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믿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
말을 꺼냈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이 쌓이면,
아이의 입은 닫히고, 마음의 문도 함께 닫힙니다.
특히 평소에 말이 많던 아이일수록
이러한 침묵의 변화는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자기 안에서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정서를 읽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와 다른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채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변화는
정서적 위기의 전조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옷 입는 것을 귀찮아하고 씻는 것을 거부함
잠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악몽을 반복적으로 꾸기 시작함
식욕이 현저히 줄거나, 반대로 과식으로 감정을 덮으려 함
자주 몸이 아프다고 표현하지만 진찰 시 뚜렷한 이상 없음
동생이나 가족에게 지나치게 짜증을 냄
책가방이나 방 정리에 무관심해짐
이러한 변화는 단발성이 아니라
며칠, 몇 주씩 지속되며 반복되는 경우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보다
“지금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싶다”는 태도입니다.
아이가 감정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논리적인 설명이나 충고가 아닙니다.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과
그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무기력하거나 말이 줄어든 상태일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변화에 놀라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 곁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말이 없어도 괜찮다는 신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는 괜찮은 존재라는 신호.
그 따뜻한 존재감이, 아이에게는 회복의 시작이 됩니다.
아이는 절대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일상 변화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아이가 갑자기 무기력해졌다면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말이 줄었다면, 그 침묵에 귀를 기울이세요.
정서의 변화는 아이의 하루 속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루를 같이 들여다보며
아이의 감정을 통역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