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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Oct 29. 2023

여행의 낭만

쿠바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

오래전 짧은 일정으로 쿠바를 여행한 적이 있다. 멕시코 여행 중에 쿠바 방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즉흥적으로 결심했다. 나름 여러 곳을 싸돌아다닌 객기 있고 철없는 어른이니만큼 자신감은 충만했다. 공항에서 비자를 받아 숙소 예약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쿠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믿고 있는 것은 오로지 중남미 여행안내 책이었다. 그 책에는 쿠바 여행 편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많은 숙소를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 곧 깨닫게 되었다.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현실은 인터넷 지옥이라는 사실이었다. 쿠바는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해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나마 버퍼링에 속이 몇 번 울렁거려야 했다. 심지어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공간도 마을 깊숙한 곳에 있어 찾기조차 어려운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 상황은 마치 문명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첨단 생활에 익숙한 디지털 노예는 생존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은 대자연에 던져진 어린아이의 사투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쿠바인들은 대체로 친절했지만 여행객에게 무관심했다. 역설적으로 지나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안도감을 갖게 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더 두려운 일이었다. 또한 쿠바는 스페인 문화권이었고 스페인어 외에는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았다. 물론 손짓 발짓만으로 어렵사리 소통이 가능하긴 했지만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길을 헤매는 것은 점점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었다.


쿠바의 뜨겁고 건조한 태양이 몸이며 마음까지 말려가기 시작했다. 그 때쯤 친절한 미소를 짓는 쿠바 사나이가 다가왔다.


“코리안?”


사나이의 첫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건장하게 큰 신장, 지나치게 강해 보이는 짙은 검갈색의 피부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두려운 마음에 몸까지 위축되는 듯 했다. 경계의 수위를 한껏 높여야 했다. 그와 말을 섞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와 빠르게 멀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사나이도 무심하게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그때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나이와 완전히 헤어진 후 급기야 현재 위치가 어디쯤인지조차 잃어버렸다. 그 순간 멘탈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합리, 논리, 이성은 온데간데없었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하게 바라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할 무렵 정말 우연히도 인사를 건네려했던 그 사나이를 다시 만났다. 그때서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마음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한국인인 줄 딱 알아봤어. 믿어도 좋으니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해 줘.” 


마치 우리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쿠바의 무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멘 쉴 곳 없는 이방인에게는 지푸라기가 필요했다. 그를 아무 이유 없이 믿기로 했다. 그에게 여행책자를 보여주며 소개된 숙박업소의 위치를 아는지 물었다.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단숨에 이끌어갔다. 마음이 편해졌다. 10여 분쯤 무작정 그를 쫒았다. 그렇게 흔들렸던 정신이 차려졌다. 그 순간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도시의 언덕을 넘고 있었고 지금 가는 방향이 내가 가고자한 그 숙소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확인하고자 시도했다.


 “너 진짜 가는 길 알아?” 의심과 불안이 한껏 담겨있었다. 다시 경계의 벽이 세워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그와 대화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대답 대신 인자한 미소와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걱정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아직은 대낮이었고 간간히 사람들이 있었던 도심지였기에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언덕 위에서 그의 긴 손이 아래쪽을 향하며 한 건물을 가리켰다.


“다 왔어 저기야.”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책자에 소개되어있는 숙박업소가 있었다. 친절한 주인, 좋은 컨디션, 아름다운 오션뷰! 만족도 높은 별 3개짜리 까사(casa)였다. 입구는 건물 2층에 있었다. 사나이는 숙박업소까지 우리를 안내했고 계단을 성금 올라가서는 벨을 누르고 숙소 주인을 불러냈다. 마치 여행사 직원처럼 보였다. 벨소리에 주인이 나와 사나이와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동양인인과 현지인이 방문한 것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사나이는 주인의 의아함을 해결하려는 듯 한참을 대화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점점 난감한 모습으로 변했다. 


빈방이 없었던 것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쿠바에 온 일이 후회스러웠다. 그런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숙소 주인이 다른 제안을 해왔다.


 “내가 근처 다른 숙소를 알아볼 테니 잠시 우리 집에 짐을 맡겨 놓고 산책이나 하고 와. 아래 해안이 정말 예쁘거든. 배고플 텐데 식사라도 하고 오던지.” 


쿠바 사나이도 그렇지만 주인도 친절했다. 마치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려는 듯 열심히 설명했다. 그렇지만 미심쩍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들기만 했다. 그 순간 건물에 거주하는 듯 보이는 서넛 사람들이 궁금한 얼굴로 우리가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왔다. 동양인이라 신기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쿠바인들에게 둘러싸고 말았다.


그들은 가운데 있는 나라는 존재를 무시한 채 서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정리될 무렵 그중 한명이 성큼 자기 가족이 대만인이라며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왜 가족사진을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자기도 나와 같은 아시안을 가족으로 두고 있으니 자기를 믿고 산책이나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빈방이 있는 숙박업소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한귀로 듣고 흘려보냈을 테지만 당시는 아무것도 해결될 거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싶었다. 


때마침 안내와 통역을 담당해준 쿠바 사나이가 바쁜 일이 있다며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해왔다.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답례로 약간의 돈을 주려고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나는 쿠바인이야. 체 게바라의 후손이지. 이건 받을 수 없어. 쿠바는 친절해. 네가 좋은 여행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해.” 그야말로 예의바르고 정중한 사양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내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모든 일을 끝냈다는 듯 환하게 웃고는 쿨하게 제 갈 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잠시였지만 그를 의심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쿠바가 정말로 좋아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잠시의 경험은 꽤나 강렬했다. 쿠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은 짐을 맡기고 산책해도 좋을 만큼 확고해졌다. 그 후 모든 결정은 가벼워졌고 쉬웠다. 주인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추천했던 해안가를 산책하기로 한 것이다. 배낭을 맡겨야했지만 옷가지 등이어서 사실 부담은 없었다. 당연히 카드나 여권 같은 중요한 물건은 따로 챙겨 소지했다. 그들에게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정말로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산책했던 해안가가 그 유명한 말레꼰 해변인 건 다음날이 되어서였다. 


10여 분 정도 산책을 했을까. 기막힌 우연이 또 시작되었다. 쿠바 사나이를 다시 만난 것이다. 마치 오래 알고지낸 친구를 만난 듯 착각할 정도였다. 마음속 깊이 반가움을 느꼈다. 사나이도 그런 듯 허물이 없었다. 


“어? 와우~ 뭐야 이거~ 또 만났네. 산책하는 중이야? 숙소는 구했어?”라며 사나이는 다소 과장된 손짓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숙소는 아직…. 근데 너무 신기하다. 오늘 몇 번째야?”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그와 나 사이에 더 이상 경계의 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도? 잘 될 거야. 쿠바는 모든 게 되는 곳이거든. 식사도 안 했지?”


“어 아직. 배가 고프긴 해. 아는 식당 있어?”


“오케이. 소개해줄 식당 있어. 나 따라오면 돼. 혹시 부담이 안 된다면 너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데.”


그가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는 말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때문에 흔쾌히 승낙을 했고 그가 소개하는 동네 식당에 방문했다. 그러나 사나이가 소개해준 식당의 메뉴판을 보고는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쿠바의 평범한 동네식당 가격이 한국의 여느 중급식당에 버금갔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른바 ‘엉클톰 여행객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쿠바에는 여행객에게 다가와 길 안내 등을 해주고 밥과 술을 사달라고 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니까 그 사나이의 직업은 호객꾼이던 것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등골이 오싹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서 이상하게 배신감이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과정이야 어떻든 도움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식사대접 한번 하는 것인데 가능한 한 그가 원하는 만큼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게 어찌 불편하기만 한 일일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마음은 이네 평정심을 찾았다. 그와 식사를 함께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사나이는 꽤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쿠바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인간적으로도 따듯했다. 심지어 그는 아바나의 어디를 방문해야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줬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아바나관광지도까지 챙겨서 주었다. 아바나관광지도는 정부에서 발행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그 사실은 공항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공항에서 안내지도를 가져가려하자 돈을 내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것 까지 사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구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헤매는 동안 그 안내지도가 절실했던 것이다. 실제 사나이의 작은 선물은 쿠바여행 내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 지도를 들고 아바나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물론 자부심 강한데 사기나 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를 비난하는 주변 지인도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그러나 쿠바 사나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우선이었다. 또한 아무 자격 없는 내가 그의 삶을 평가하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깟 식사보다 더 크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의 본질과 상관없이, 나에게 매우 고마운 쿠바 사람이었다.


사나이와 헤어진 그 후에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호객꾼들을 만났다. 경험치가 쌓여서 그랬는지 일부러 그네들을 쫓아가서 수다 떨며 놀기도 했다. 물론 이날처럼 비싼 수업료는 지불하지는 않았다. 천원 남짓한 모히또를 1만 원으로 구매해 대접하는 정도였다. 호객꾼이 원하는 식사를 대접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크게 불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수다스러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하지만 간혹 쿠바의 역사나 올드카의 유래 그리고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있는 현실에 대한 질문도 했다. 또한 쿠바의 정치현실과 권력을 이양 받은 카스트로 동생의 독재와 미국에 대한 불만 등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나 경제문제 같은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그것은 생산적이지 않은 허세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충분히 유쾌하고 만족스러웠다. 


쿠바에서의 여행은 고립감으로 시작했고 이방인으로서의 체험이었다. 물론 진정한 이방인의 삶을 경험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단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규칙을 가진 세계를 경험해보았다는 정도다. 그러나 짧은 순간 고립을 통해 두려움을 느껴야했고 경계를 해야 했으며, 대책 없이 타인을 의지하려는 나약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바나라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질서와 관습을 겪어 내는 것과 같았다. 순간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공간에서 태어났고 살아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이질적인 생활양식이나 가치관은 지극히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행에서 내가 얻게 된 건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오는 신선함이 아니라 언제든 환경은 자신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압박이 불편함이나 부당함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계의 담을 세워야하는 필요성을 알게 된다.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며 살아온 사람들이 만난다는 것은 이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타인을 경계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낯설다는 것은 공간이주는 이질감 보다 나와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때문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어색함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이해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국 타인은 내 기준의 연장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는 타인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내 기준과 가치로 그를 포획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순간 싸우게 될 것이다. 개성을 부정당한 인간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모욕과 조롱이 자유가 아니듯 나의 가치가 타인의 가치가 아니며 또한 타인의 가치가 나의 가치일 수는 없다. 쿠바의 사나이에게 나는 그에게 돈을 벌게 하는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일 순 있지만 그는 나에게 따듯하고 인간적인 쿠바를 기억하게 한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내가 믿는 기준을 쉽게 적용하려한다. 나에게 있어 익숙하고 검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관, 합리, 이성, 과학, 실증을 활용한 수많은 상징들이 동원된 보편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말랑말랑해져도 우리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낭만 그래 그것을 낭만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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