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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Nov 01. 2023

열정과 현실의 가혹함 사이에서

고흐: 삶과 예술의 낭만적 비극

화가는 눈에 비친 대상을 그린다. 그림은 화가의 관념 속 실체를 표현하는 언어다. 대상을 발견한 화가는 대상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상황과 분위기를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요소를 조합하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가 완성될 때 비로소 화가의 완전한 세계가 열린다. 고흐가 붓을 움직이는 순간이다.


고흐의 삶과 예술은 낭만과 비극의 경계에서 펼쳐진 드라마처럼 극적이다. 낭만이라는 단어는 흔히 감정의 격정과 꿈에 대한 동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낭만의 본질은 단순한 감상주의를 넘어서서,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면세계의 이해를 포함한다. 그래서 낭만은 종종 비극적 결말과 불가피하게 얽힌다. 인간의 꿈과 이상이 때때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기 때문이다. 


고흐는 자신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강렬하고 독특한 화풍을 창조해냈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비록 현실이 가혹하고 삶이 고단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고흐의 삶은 경제적 빈곤, 정신적 고통, 사회적 고립이라는 혹독한 현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예술적 열정과 병적인 상태를 증폭시키며, 결국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끌었다.


고흐의 예술과 삶에서 낭만과 비극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붓 터치를 통해 내면의 열정과 갈망이 표현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그를 소모시키고 파괴했는지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고흐의 예술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과 갈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이는 삶과 예술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때로는 갈등하며, 결국에는 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그는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다른 모든 부분에서 재능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림도 잘 그리지 못했다. 하지만 책을 좋아했고 사유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평범했던 고흐는 16세가 되던 해에 큰아버지의 소개로 헤이그에 있는 구 필 화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화랑에서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의 복제품을 보게 된다. 이 그림은 고흐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그가 봐왔던 그림들은 대체로 관념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이었으나 밀레의 작품은 인간의 거친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고흐는 밀레의 영향으로 노동자, 농민 등 서민들의 삶과 애환과 그들 주변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노출시키고자 했다. 노동자의 삶이 지치고 고단하게 보였다면 고흐의 붓은 더욱 거칠게 캔버스를 채워갔고 그림은 더욱 투박해져 갔다. 이는 대상의 본질인 삶 그 자체를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방식을 적용한 것이었다.


고흐가 살았던 시대의 미술 풍조는 정결하고 순결하고 완벽한 종교적이거나 이상적 가치를 화폭에 담아내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었다. 대다수 화가들은 대체로 신화나 역사적 판타지를 통해 사물을 그렸다. 그것이 비록 허구에 가까운 것이더라도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옳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고흐에게 이러한 그림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실체 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순이었다. 


고흐의 작품세계는 화폭 위에 존재와 본질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을 추구한다. 존재는 대상인 사물을 의미하며, 본질은 그 사물의 의미와 가치를 나타낸다. 따라서 화가의 인상을 담아내는 분석적 화풍이었다. 그래야만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이유로 고흐는 관념적인 것보다 보이는 실체적 사물에 관심이 더 많았다. 화려함이나 고귀함은 그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요소였다. 오히려 현실의 초라하고 거친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고통스러운 현실은 화가의 마음을 뒤틀리게 하며 그를 왜곡시켰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화가 자신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이데거는 고흐가 1886년에 그린 《구두》라는 작품을 보며 “신어서 틀어지고 해어진 신발 안쪽의 어둡게 열린 틈 속에서 노동의 고단함이 보이고 신발 도구 속에서 거친 바람이 부는 들녘의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완고함이 보인다.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농부의 근심과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에 들녘에 나가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안도감, 혹은 아이의 출산과 죽음 앞에서 나타나는 초조와 전율이 보인다.”라고 평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본 소년이 아버지의 고단한 인생과 사랑을 느끼는 순간을 상상한다. 구두라는 실체를 통해 소년이 아버지를 생각한 것처럼 하이데거는 고흐의 그림 속 구두를 통해 구두의 주인인 농부의 삶을 생각했다. 고흐가 추구했던 진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고흐는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함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고귀한 가치나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려 했던 사람들은 고흐의 이러한 인상주의를 하찮고 가벼운 것으로 여기며 때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고흐는 평생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주 상처받았고 친한 친구인 고갱까지 오해하며 싸워야 했다. 결국 알코올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그는 망가졌다.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술에 취해있는 고흐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차가운 외면이 그의 그림에 대한 열망이 만나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정신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고흐는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고흐는 질서를 전복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압생트를 너무 마셔 알코올 중독에 빠져야 했고 그 부작용으로 뇌세포마저 파괴되어야 했다. 그 증상으로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이 유달리 노란색이 많이 사용되었던 이유였다. 보이는 것을 그려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병적이고 광폭하며 천재였던 인간의 자기 파괴의 과정보다는,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동경한다. 고흐가 화가로서 삶을 시작했던 1881년부터 1890년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아를, 생레미 등에서 그린 작품은 광기로, 1890년 5월에서 7월까지 생의 마지막 두 달간 그린 그림들은 격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가 살아생전 그렸던 습작을 포함한 2천2백여 점의 그림 대부분은 당시에 팔리지 않았다. 당시 사회는 그와 그의 그림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고 옳은 신념이나 이상을 표현한 것도 아니었다. 고흐의 그림은 새로운 것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았고 불편했다. 때문에 그는 지독하리만치 가난했고 외로웠다. 고흐의 죽음은 극적이다. 그러나 화폭에 담으려 했던 가치에 더 집중하는 현재의 시각은 그의 죽음보다는 훨씬 긍정적이다.


그가 죽은 후에야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그 시대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예술의 혁신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고흐의 예술은 그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그의 내면세계와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그의 삶의 경험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고흐의 예술은 단순한 미적 즐거움을 넘어서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작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며, 오늘날에는 그의 그림에 대한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고흐의 예술과 삶을 통해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탐구이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길을 걸어간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낭만이 때론 비극을 유발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낭만은 행복, 설렘, 따뜻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안겨주고, 영감을 불어넣어 창의력을 키우며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자유를 추구하는 동력을 얻게 된다. 낭만은 규칙과 전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다. 


낭만은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감정의 격렬함과 열정의 표출만으로도 우리는 해방을 경험한다. 그래서 낭만을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고흐가 보여주었던 것은 그 포기하지 않은 자유였다. 그래서 그것은 비극적인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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