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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Nov 01. 2023

낭만 참 어렵다

데미안 : 낭만과 쾌락의 경계에서

낭만은 곧잘 쾌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인간의 내면은 긍정적이고 밝은 것들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그 곳에는 어두운 면과 음침한 욕망들이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은 때때로 유혹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성장한다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낭만과 쾌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내면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고, 낭만은 종종 이상화된 상태나 극적인 감정을 포함하지만, 쾌락은 즉각적인 만족과 행복을 추구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욕망과 갈등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두운 욕망과 충동적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균형을 찾기 위한 첫 단계다.


어린 시절, 내 삶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로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었고, 이 두 가지는 분명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나무람이나 칭찬 역시 이와 같은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다. 나는 이 명확한 원칙들을 의심하지 않고 따랐고, 그 결과 종종 주인공으로 인정받았다. 때때로 나는 정의의 용사가 되어 지구를 지켜야한다고도 생각했다. 빨간 망토를 두른 무적의 슈퍼맨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내 어린 시절은 새로운 경험으로 언제나 특별했다. 그러나 그 시절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사실 누구나 경험하는 클리셰에 불과했다.


당연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긴 건 헤르만헷세의 소설 《데미안》을 만나면서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갓 졸업했을 무렵이다. 처음에는 소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 짜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적 호기심이 충만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이 읽지 않을 법한 이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것은 분명 겉멋이었지만 그러한 내 생각은 적중했다. 책 속 명구들을 외워, 친구들에게 인생에 관한 거창한 조언을 제공하면 친구들은 놀란 눈빛으로 반짝였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존경심이 나를 더욱 더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주목받는 것은 자극적이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다른 친구보다 더 성숙해지거나 훌륭해진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분명 겉멋에 취해 있었고 수다스럽게 장엄한 인생을 연설하곤 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먼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노력은 잘난 척 그 이상의 일이었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몰입했다. 싱클레어의 여정은 단순히 성장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의식의 변화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어린 싱클레어의 세계는 부모가 제공한 질서로 부터 안전이 보장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하인들의 세계였다. 그들의 세계는 싱클레어가 머물고 있는 세계와는 다르게 더럽고 폭력이 있는 어두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세계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였다. 


인간의 내면도 이와 같다. 서로 상반되는 성향과 가치관이 있을 수 있다. 겉으로는 하나로 보일지라도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계인 것이다. 나의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정의로운 우주영웅이었지만 동시에 거만하고 허세가 있는 냉소적인 소년이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는 조화로운 균형이었다.


싱클레어가 크로머를 만나면서 균형 잡힌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싱클레어는 집 밖의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 허세로 거짓말을 했고 덩치 큰 크로머는 이를 알아채고 말았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거짓말을 빌미로 그를 협박하고 돈을 갈취했다. 태어나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던 싱클레어는 그날 저녁 구역질을 했고 오한과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성장에 수반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마침내 자신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것은 크로머가 살고 있는 어둡고 폭력이 넘치는 두려운 세계였다. 


새로운 세계와 마주한 싱클레어는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했다. 그 공포의 어둠이 싱클레어를 삼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빛이 나타났다. 전학생 데미안 이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우월했고 냉정했으며 매혹적이었다. 데미안도 그런 싱클레어가 마음에 들었다. 데미안은 크로머로부터 싱클레어를 지켜냈다. 그는 크로머와 같은 사람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싱클레어의 내면에 있는 힘과 자신감을 회복해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에 대해 다른 관점을 이야기했다. 싱클레어에게 카인은 아벨이라는 동생을 죽인 죄인이며 신을 거역한 죄악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협박한 크로머와 같은 악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런 카인을 대단한 용기와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카인은 악한사람이 아닌 강한사람이었음을 역설했다. 그로인해 형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은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결국 크로머는 악한 게 아니라 강했을 뿐이고 자신은 선한 게 아니라 약했다는 이야기였다. 피해자였던 싱클레어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책을 읽고 있었던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선이면 선이고 악이면 악이지 강한 것은 무엇이고 약한 것은 또 무엇일까? 이는 소년이 강해질수록 누군가에게 악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데미안의 주장을 부정할 방법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믿고 있는 모든 가치를 의심해야만 했다. 데미안이라는 안내자는 분명 자신의 외부에 위치했던 그 어두운 세계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어떤 행동이 가능한지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미심쩍은 데미안의 생각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한 싱클레어는 방탕한 삶에 빠지며 향락을 추구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처럼 강해졌고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도 악도 아니었다. 강해진 싱클레어는 세상을 얕잡아 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혼란을 야기했지만 그동안 자신을 억압했던 질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기도 했다. 일탈은 그에게 종종 쾌락을 가져다주었다. 


그 무렵 싱클레어에게 이름도 알지 못하는 소녀가 나타났다. 그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녀를 사랑하고 연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 싱클레어는 그는 그간의 향락과 방탕한 삶을 뒤로하고 변화를 결심했다. 자신이 강해지는 것보다 소녀를 숭배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더 격렬했기 때문이었다. 싱클레어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는 그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만든 공존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자신의 욕정을 억제하고 베아트리체를 지키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갈등과 번민이 남아있는 불완전한 세계였다. 언제든 자진의 욕정이 통제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시기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우주이다.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라고 한다. 


싱클레어는 처음에 아브락사스라는 존재를 몰랐다. 그러나 교사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그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혼란을 해결할 수 있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에게 세계가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는 것, 아브락사스가 선과 악을 초월한 존재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가르쳤다. 이를 통해 싱클레어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실체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살아온 세계는 빛과 어둠, 평화와 폭력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브락사스를 통해 그는 이 두 세계가 사실은 하나임을 깨달았다.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왔던 의문들이 이제는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선과 악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하인의 세계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던 낯섦과 크로머로부터 받았던 협박, 데미안을 만나고 카인의 이야기를 통해 크로머가 악이 아닌 강함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싱클레어는 선과 악, 강함과 약함의 경계가 모호하며, 결국 그것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성년이 된 싱클레어는 에바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싱클레어의 첫사랑 베아트리체와는 다른 관능의 대상이자 성숙한 여인이었다. 소녀를 지켜주고자 했던 소년의 불안정한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성년이 된 싱클레어는 이미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겪으며 불안정했던 감정들을 극복해낸 상태였다. 그는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이상화된 사랑에서 벗어나, 에바부인과의 만남을 통해 성숙하고 현실적인 관계를 경험한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어린 시절의 사랑은 그에게 중요한 성장의 발판이 되었지만, 에바부인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그는 더 이상 불안정하고 미완성의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에바부인과의 교류를 통해 내면의 평화와 균형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싱클레어에게 단순한 관능의 대상을 넘어, 삶과 사랑,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소년이었을 때 나는 데미안을 읽으며 삶이란 명료한 선악의 관점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의미로는 형용모순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 것 같았다. 그동안 믿고 있었던 도덕적 규범이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고 악이라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세상은 공정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정의를 강요했다. 그것은 너무나 확실했기에 더 이상 의문이 아닌 분노로 변해갔다. 소년의 밝고 명료했던 그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편해졌다. 소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꽤나 그로테스크한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주변 어른들이 소년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세계는 결국 내 안에 있는 공존하는 세계라는 걸,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은 소년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야 말았다. 그것은 문제아의 탄생이었다. 


새가 알 속에 있을 때는 부드럽고 따듯하며 안전한 평화의 세계에서 보호받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온 어린 새에게 안전과 평화는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살기위해서 더 빨리 더 높이 날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해답은 없다. 다만 소년에게 이 질문은 삶의 전부였지만 지금은 한 낯 가치 없는 낭만일 뿐이다. 


소년 시기를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지속해서 던진다. 나는 여전히 유혹에 약하고 충동적이며 즉각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본성이지만 균형을 잃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낭만 그것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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