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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Nov 05. 2023

낭만이든 뭐든 돈이 있어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 낭만을 잃지 않은 사람들

나는 과거, 사람들에게 종종 돈의 중요성을 자주 말해왔다. 돈은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여 삶을 유지하고 질을 높이는 데 쓰인다. 공공부조와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 역시 재정적 자원에 의존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제 구조와 사회 시스템은 돈의 유무에 의해서 수준이 정해진다. 돈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일상과 모든 사회적, 경제적 상호작용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소다. 경제적 안정은 성장을 촉진하며, 개인의 복지, 직업 선택, 교육 접근성, 건강까지 중요한 기여를 한다. 사회 차원에서도 경제력은 공공 서비스의 질 향상, 사회적 불평등 감소, 문화 및 예술의 지속적 지원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종 돈 외의 것들, 예를 들어 사랑,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소중한 추억들을 삶에서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나에게 인간관계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다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했다. 비록 많은 관계들이 이해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더 깊은 가치나 의미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인식에 반발하곤 했다. 정말로 사랑을 하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추억들을 쌓는데 돈은 필요 없는 것일까? 사랑이나 우정 그리고 가족관계가 금전적 가치로 측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현실적으로는 공허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여행, 선물, 심지어 일상적인 가족 활동이나 연인과의 데이트조차 모두 비용을 유발한다. 그것은 관계에서도 돈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만일 누군가가 명품이나 자동차와 같은 고가의 선물을 거래가 아닌 순수한 의도로 주었다면, 선물을 받는 순간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대체로 그것이 자신을 위한 사랑이나 우정의 증거로 인식하지는 않을까? 물론 이러한 선물을 의심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심에는 선물이라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도와 목적이 자신에 대한 진정성 있는 감정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렇기에 고가의 선물이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경우 얼마든지 이해, 존중, 신뢰, 사랑이라는 깊은 감정을 형성하며 모든 의심을 해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주 돈이 행복을 사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돈과 행복이 분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결국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분명한 대안이다. 그렇기에 경제적 안정성의 중요성은 나에게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이었다. 경제적 안정성이 있어야만 기본적인 행복과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었고, 그것 없이는 삶은 안정감을 잃고 불안이 증가할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 관계는 곧잘 부정적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당연하게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고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돈보다는 낭만을 추구해야한다고 떠들어도 결국 돈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서 낭만이든 뭐든 실현할 수 있다. 그만큼 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돈 벌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인간관계를 잃어갔다. 굳이 친구를 만나지 않았고, 이제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사라졌다. 가족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대화할 내용이 사라졌다.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이 없었던 탓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자주 긴장된 관계를 불러왔다. 서로를 불신했고 나는 지쳐갔다. 물론 거래관계에서의 관계나 신뢰는 유지했지만 그것은 공식적인 관계였다. 나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할 사람들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다. 그러한 경험에서 내가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관계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만을 표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며, 어떻게 감정을 관리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의 전 과정을 포함한다. 개인이 갖는 고유한 힘을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을 공유하며, 그가 자신의 문제에 어떻게 도전하며 대처하는지 까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돈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내 시간이 투자되어야만 한다.


돈은 분명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다면적이고 그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삶의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어려운 경제적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함께 견딜 수 있으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물질을 충족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경제적 안정과 인간관계 간의 균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성공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돈이 많든 적든 관계에서의 질은 투자하는 시간과 관심의 양으로 결정되기 마련이다. 


오래전이지만 빔 밴더스(Vim Venders) 감독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영화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의 열정과 인간관계를 유지해나가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라는 제목은 1990년대 후반에 재결합한 쿠바의 음악 그룹이자 그들의 이름을 딴 앨범의 이름이다. 또한 실제 1950년대 쿠바에 있었던 ‘환영받는 사교클럽’이라는 의미를 가진 클럽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당시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라이 쿠더(Ry Cooder)가 음반사의 제안으로 쿠바의 음악과 아프리카의 음악을 결합한 음반을 기획하기 위해 쿠바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1960년 쿠바에서 혁명이 발생하자 재즈 등의 음악에 비판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재즈는 자유주의적이고 서구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정부는 이 음악을 부르주아 문화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혁명적 음악을 장려했다. 그로 인해 쿠바에서 재즈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30년 넘는 시간동안 음악가들은 일자리를 잃어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라이 쿠더는 당시 이 사교클럽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을 찾아내 그들과 함께 음반을 제작했다. 


음반제작에 참가한 음악가들은 꼼빠이 세군도 (Compay Segundo / 1907년생, 기타, 보컬), 이브라힘 페레 (Ibrahim Ferrer / 1927년생,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 (Omara Portuondo / 1930년생, 보컬), 루벤 곤살레스 (Ruben Gonzalez / 1919년 생, 피아노), 엘리데스 오초아 (Eliades Ochoa / 1946년생 보컬, 기타)였다.


이브라힘의 인터뷰는 강렬했다.


“일자리를 잃고 아무도 날 찾지 않았어요. ‘이러다 굶어 죽는 걸까? 천만에!! 구두도 닦고 복권도 팔아야지! 쓰레기통이라도 뒤지고.’ 난 부양할 가족이 있거든요. 난 이런 얘기가 부끄럽지 않아요.”  


“어느 날 오후 후안 드 마크로스가 날 찾아왔어요. 난 그때 구두들 닦고 있었어요. 후안이 묻더군요. “지금 머 하는 거야?" 난 구두를 닦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어요. “자넬 찾아다녔어. 함께 가"라고 하더군요. “난 더 이상 노래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가 말했죠. "안 돼. 난 자네 목소리가 꼭 필요해." 내가 물었죠. “언제? 내일?" 그러자 후안은 "아니 지금당장"이라고 말했어요. 목욕이나 하고 가자고 말했지만 후안은 단호했어요. "안 돼. 당장" 정말 말도 안 돼는 상황이었지만 후안이 다그치는 바람에 세수만 하고 구두의 먼지만 털었죠. 그렇게 에그렘 스튜디오에 왔어요.”  


“에그렘에서 오초아를 만났고 콤파이 세군도랑 다른 친구들도 만났죠. 루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는데 날 보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죠. 내가 불러서 인기를 얻었던 곡인데 '칸델라'라고 알려진 곡이에요. 나도 노래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녹음하게 된 거예요.”  


그 후 그들은 6일간의 녹음 끝에 1장의 앨범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앨범은 전 세계에서 800만장이 넘게 팔렸다. 어쩌면 잊힌 노장들의 허세였지만 낭만 넘치는 그들의 삶이었다.


이브라힘은 말했다. “최소한 지금은 살아있고 싶어. 하나님도 마누라도 내 말을 들어줘야해. 좀 더 즐긴 시간을 줘야지. 가끔 그들은 너무 인색하단 말이야.” 


영화에 등장했던 모든 음악가는 이제 영면에 들었다. 그들의 청춘시절은 화려했으나 쿠바의 정치적 상황으로 30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30년 후 그들은 다시 과거의 열정을 되살렸다. 그렇기에 이들의 음악적 재결합은 단지 상업적인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공유하고 견뎌낸 이들의 인간적인 깊이와 결속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라이 쿠더가 쿠바의 뮤지션들에게 다가간 것은 그들의 재능을 믿었기 때문이었지만, 이 노련한 음악가들은 그들의 삶과 역사, 감정이 담긴 울림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30년간 살아왔다. 그들이 영면하기 전까지 고작 수년의 시간동안 그들이 가진 재능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그들의 예술이 단지 물질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삶의 즐거움과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며 힘들게 살아온 경험을 공유했고 잊혔던 음악을 되살린 것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자주 낭만을 잊는다. 바쁜 일정과 삶의 무거운 부담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곧 돈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은 반드시 돈일 필요는 없다. 때론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만으로도 결속을 만들고 그 결속이 서로의 가치를 강렬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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