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ome Nov 06. 2023

낭만에 대한 나이브한 스웩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된다​​StopDreaming Start Living

나는 자주 소심한 몽상가가 된다. 비밀스러운 내면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꿈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그만한 게 없다. 내가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기에 앞서 현실의 엄격함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심함은 나의 성격을 반영한 것만은 아니다. 나의 사회적 활동은 그리 소심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나는 나의 숨겨진 욕망이 결핍에서 비롯된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 것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에서의 나의 역할, 즉 내가 맡은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의 유지가 상상적인 일탈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이상의 세계란 허상일 뿐이다. 


물론 때로는 꿈을 갖는 것만으로도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들에게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의 미래나 운명을 맞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이유로 꿈을 키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괴리가 있는 법이다. 


짐작하겠지만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그래서 나는 자주 실패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두려움이 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또한 이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게 만들고 수많은 다양한 경험의 기회마저 방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현실이라는 부담은 매우 무겁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것은 어쩌면 현실에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소심한 방법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압박감과 제약이 극복되지 않으면 삶의 지속성이나 만족도는 현저하게 낮아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방법이 절실해진다. 그것의 해결책으로 여행만한 것도 없다. 


몽상이란 단지 현실의 제약에서 상상만으로 벗어나는 것이지만, 여행은 최소한 새로운 세계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또한 상상을 현실로 전화시킨다. 자신의 욕망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멈추게 될 때 여행은 그러한 벽을 허문다. 실제로 새로운 장소에 방문하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만으로도 자신의 처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비록 그것이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강화시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벤 스틸러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는 흥미롭게도 나의 소심한 일상과 닮아있었다. 영화는 주인공 월터라는 소심한 몽상가의 여행이야기이다. 월터는 잡지사에서 16년간 근속해온 평범하나 직장인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근무하다 보니 장인으로 인정받았다. 월터라는 인물을 직장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직장을 벗어난 그의 인생은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자신조차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의 실제 세계는 직장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고 그가 직장을 벗어날 때는 오직 그의 상상세계가 동원될 때뿐이었다. 그는 직장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던 완벽한 부품이라고 해도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잡지의 표지에 사용해야하는 필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실수가 그의 인생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월터가 다니는 잡지사는 시대의 변화와 경영상 이유로 오프라인시스템을 축소하고 온라인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는 직원들을 해고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새롭게 임명된 회사대표는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잡지에 실려야하는 마지막 호의 표지 사진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은 월터에게 정말 가혹한 일이었다. 그는 이 실수로 인해 분명 해고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더욱 월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월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진을 촬영했던 사진가를 찾아가 원본 필름을 구하려고 마음을 먹게 된다. 


월터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단지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얻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위한 공여가 아닌 오롯이 자신을 위한 이기적 의무여야 했다. 하지만 월터의 삶은 직장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튼튼한 부속품이었다. 그렇기에 개인인 월터는 희미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물론 전문가로서 그의 삶은 평가받았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소심하게 상상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사용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여행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여행은 현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피와 호기심 같은 심리가 작용한다. 그러나 영화 속 월터의 여행은 일의 연장이었다. 그가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잡지표지에 실릴 사진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여행은 본의가 아니다. 


하지만 여행에서 월터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 비록 그 여행이 삶의 여유를 회복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걱정하면서 직장에서의 삶과는 다른 의미로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고 낯설고 새로운 관습과 관행을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새롭게 맺는 인간관계 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계에서 끝없이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져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사진가 숀을 만난다. 숀을 만날 때 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필름은 이미 월터에게 주어져있었다. 결국 월터의 여행은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직장으로 돌아왔지만 사표를 내야했다. 그러나 숀이 촬영한 마지막 잡지의 표지사진은 일하고 있는 월터 자신이었다. 잡지는 가판대에서 수많은 월터의 모습을 복제하고 판매되었다. 그 잡지의 이름은 라이프였다.


때때로 삶은 우리를 익숙한 환경에서 밀어낸다. 그것은 충분히 괴로움과 고통스러운 현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괴로움과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월터의 여행은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찾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의 여행은 그에게 개인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그가 소속된 직장에 대한 그의 인식도 변화했다.

어쩌면 '현실의 중압감'과 '몽상' 사이의 균형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일 것이다. 꿈을 꾸고 상상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지만, 그 꿈을 현실로 만들려 할 때 종종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꿈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여행을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환경과 문화는 자신의 내면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행은 우리가 삶의 다른 영역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재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이 될 수도 있고, 개인적인 삶이 될 수도 있다.


월터의 이야기처럼, 실패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해야할 가치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처럼 실패의 두려움을 느끼고 자주 소심한 몽상가가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면, 월터의 여정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고,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실과 꿈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그 균형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꿈을 추구하는 것은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실패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는 결국 성장과 자기 발견의 과정으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현실이라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꿈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낭만을 추구해야 할까? 낭만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과거의 유행처럼 취급되어 마치 낡은 서랍 속 잊힌 편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낭만은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벗어 던지고 우리 안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낭만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단조로움을 뒤집고, 숨겨놓은 감각을 깨우며, 우리의 꿈을 현실의 틀 안에서만 그리지 않도록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상상력이란 돛을 달아 주어 현실이란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발견한다.


낭만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삶의 질서와 무질서, 아름다움과 혼란, 그리고 평온과 열정 사이의 균형을 이해할 수 있다. 월터의 삶에서처럼, 현실은 때때로 단조로움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낭만은 그 단조로움을 복잡함으로 화려함으로 만든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낭만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전체를 건너는 데 있어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일 것이다.


인생이란 단순한 생존을 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별빛 아래 무성한 숲을 걷는 듯한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과 같다. 낭만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처해진 조건의 깊이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고뇌를 뛰어넘어, 자아실현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낭만은 결코 구식의 잔재가 아닌, 우리 각자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불꽃이며, 그 불꽃을 키워나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자 기쁨이다.

작가의 이전글 낭만이든 뭐든 돈이 있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