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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Nov 07. 2023

​사랑 그 쉽지 않음에 대하여

사랑의 기술 : 합리와 이성, 버려진 개인들


우리는 낭만을 종종 사랑과 연결 지어 생각한다. 이는 낭만이 사랑의 한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사랑은 연인들 사이의 감정적 교류,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강한 유대감으로 설명된다. 이과정은 매우 개인적으로 형성되고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적인 기대를 불러온다. 그렇기에 낭만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감정적 연결과 깊은 애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기쁨, 열정, 때로는 슬픔과 같은 감정조차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사랑에 빠진 이들은 개인적인 친밀감이라는 측면에서, 서로의 가장 취약한 면들까지 공유한다. 


문화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문화에서 결혼을 이상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보고, 이러한 관계를 낭만적인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을 선호한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랑과 관련된 화학 물질들이 우리의 감정적인 경험을 강화시키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느낌을 강화시킨다. 이처럼 사랑의 경험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 보편적이며, 이는 낭만을 인간의 경험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만든다. 이러한 보편적 경험과 생물학적, 문화적, 정서적 요소들이 얽혀 있어 낭만은 사랑의 강력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역사적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에로스는 사랑과 성적 욕망의 신이다. 그는 대체로 매력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며, 때로는 눈을 가린 채로 표현되었다. 이는 사랑이 종종 눈이 멀게 만든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것이다. 에로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큐피드(Cupid)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종종 사랑의 화살을 쏘아 사람들이 서로에게 끌리도록 만든다. 이 사랑의 화살을 맞은 사람이나 신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세계를 무시하고 오직 상대의 감정이나 상태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에로스의 화살이 개인이 갖고 있었던 모든 가치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일상에서도 상대방을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리고, 이는 때로는 비합리적이거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랑이란 감정은 그 자체로 사람들이 특별하고 이상화된 경험을 추구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다.


사랑은 예술과 문학에서도 두드러지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두 젊은이가 가족의 오랜 불화를 뛰어넘는 사랑을 나타낸다. 이들의 사랑은 진실하게 표현된다. 가족의 반대와 사회적 제약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사랑의 불변하는 힘을 상징하며, 수세기를 거쳐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도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그녀의 예정된 신랑인 코니쉬 왕 마크에게 인도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사회적 금기와 싸우며, 이들의 열정은 개인적인 희생과 사회적 충돌을 초래한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 개인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방법과, 그러한 사랑이 가져오는 기쁨과 아픔의 균형을 이해하게 한다.


이처럼 예술과 문학에서 낭만적 요소들은 사랑과 연결되어 광범위하게 표현되어왔다. 낭만과 사랑은 종종 감정의 진정성과 순수성의 상징으로 묘사되며, 예술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사랑을 통해 인간 경험의 깊이를 이해하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낭만과 사랑은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에 깊이 뿌리박힌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을 전통적인 인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바라본다. 프롬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의 흐름이나 본능적인 충동이 아니라, 인간이 배워야 하고 의식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기술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사랑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데 필수적인 활동이다.


프롬에 따르면,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책임'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히 감정의 호소를 넘어서는 책임감이 요구된다. 둘째는 '존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독립성과 개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존재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셋째는 '지식'인데, 이는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포함한다. 넷째는 '인내'로, 사랑의 기술은 때로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프롬은 낭만과 사랑을 일시적이고 종종 환상적인 감정의 상태로 묘사한다. 그는 이런 낭만적 사랑이 '사랑에 빠짐'이라는 감정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이 지속적인 '사랑의 기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랑을 하나의 '활동'이자 '노력'으로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깊이 투자함으로써 비로소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때 낭만이라는 개념은 사랑의 기술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사랑의 실천 속에서 통합되어야만 한다. 낭만이 사랑의 초기 단계는 종종 열정적이고 강렬함을 제공하지만, 이러한 열정이 지속 가능한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 배려 있는 소통, 공통의 가치 창조, 취미나 활동의 공유 등이 모두 '사랑의 기술'에 포함된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에서는 '자기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돌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자기 사랑이 있을 때,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도 발전하며, 이는 결국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진다고 프롬은 주장한다.


따라서 프롬은 사랑과 낭만을 '감정의 상태'로 국한시키지 않고, 이를 지속적인 노력과 성찰, 상호 작용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고, 공동의 삶을 형성해 나가는 것, 그것은 개인적인 것에서 벗어난 사회적 필요로서의 사랑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다. 


그러나 낭만의 관점에서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사랑은 계획되거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내면의 충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그것이 반드시 이성의 지배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프롬의 접근 방식은 사랑의 갑작스러운 발현을 기술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 문학과 예술에서 낭만과 사랑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운명의 힘에 의해 조정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우리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본능적인 힘이다. 사랑의 기술에서 프롬이 제안하는 자기애, 친밀함, 정열, 게임 플레이, 존경 등의 요소는 사랑의 낭만적 측면에 비해 과도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지나치게 인간의 삶을 사회적 균형을 위한 희생으로 해석한다.


또한, 프롬이 사랑을 인간의 존재에 필수적인 '활동'으로 설명하면서 그것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는 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다. 사랑은 때때로 '받는 것'에 대한 기대나 조건 없이 '주는 것'으로 발현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헌신과 자신의 감정에 굴복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분명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통해 사랑을 더 나은 것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기술을 명시한다. 하지만 낭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접근은 사랑의 신비롭고 예측 불가능한 특성을 훼손할 수 있다. 사랑은 단순히 기술로서 통제가능한 정신적이나 정서적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와 연결된다. 따라서 사랑은 논리나 이성을 뛰어넘는 경험일수 있다.


"사랑의 기술"이 제시하는 실용적인 사랑의 규칙과 원칙은 결국 사랑을 과소평가하고, 감정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낭만과 사랑은 개인의 정체성을 변형시키고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혁명적 힘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이란 감정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접근보다는, 사랑에 의해 '되는 것'에 대한 진정한 변화를 요구한다.


나는 프롬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습되고 개선될 수 있는 '기술'로 사랑이 간주되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이는 영혼의 깊은 연결과 우연의 산물, 그리고 마음의 자유로운 표현으로서 남겨두어야 하는 감정이다. 그것은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창조적 표현과 유사하며, 기술로 규정되거나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낭만은 사랑이 주는 비합리적이고 혼란스러운, 그러나 강력한 변화의 가능성을 지켜내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사회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모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낭만과 사랑의 가치는 에리히 프롬의 생각처럼 합리와 이성을 통해 이해하고 발전시키려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사랑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과정에서 발달했다고 여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사랑은 생물학적으로 적합한 상대를 찾고, 자손을 낳고, 그 자손이 성장하여 번식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감정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사랑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여러 가지 전략적 이익을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동안 육아에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한 인간의 후손들은, 부모가 협력하여 자녀를 키우는 환경에서 생존률이 더 높다. 이런 맥락에서, 강력한 유대를 형성하여 안정적인 쌍을 만든다는 것은 공동 육아의 성공률을 높이려는 목적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진화적 측면에서 사랑의 다양한 형태인 로맨틱 사랑, 친밀감, 헌신 등은 강렬한 성적 욕구와 연결은 순수한 감정의 기초라기보다는 초기의 짝짓기 단계를 촉진이다. 또한 친밀감은 장기적인 관계의 유지를 돕는 수단이고 헌신은 자신의 짝과 자손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의미한다. 


오늘 날 우리의 결혼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대체로 순수한 감정인 사랑을 결혼의 전제로 말하곤 하지만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결혼이 함께할 짝을 선택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물리적 매력, 상대방의 지위, 건강, 잠재적인 투자 능력 등을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자손을 남길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인 지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진화심리학은 사랑의 기능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필요한 행동양식으로 설명한다. 사랑을 감정의 깊이나 정신적 연결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닌, 단지 생물학적인 욕구와 선택의 결과로만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합리와 이성을 추구하는 과학의 입장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단순히 생물학적 기능, 즉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짝을 찾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만 설명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행복, 슬픔, 분노, 기쁨, 슬픔, 실망, 놀람, 두려움, 열정, 증오, 질투, 안도, 괴로움, 우울, 혐오, 감사, 동경, 만족, 흥분, 후회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 아무 의미 없는 감정에 우리는 왜 매달리고 절박해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더 낳은 삶을 상상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일까? 


나는 또다시 이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사랑의 정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랑을 그 낭만적인 기대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전율과 안정감을 지지한다. 사랑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게 만들고, 그 선택이 때로는 우리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으로 다가 오더라도 나는 낭만을 추구한다. 그것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인간으로서 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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