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목소리가 공기 속으로 퍼진다. 허공을 맴돌다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문장이 되어 글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돌아오고, 같은 바람이 또 불어올 때, 문득 알게 된다. 오래전에 흘려보낸 말들이 다시 돌아와, 이제는 귀가 아닌 눈으로 읽게 된다는 것을. 지나간 길 위에 낙엽이 쌓이듯, 어떤 말들은 그 시절을 품고, 아무 말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흔적을 남긴다. 떠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든 사라질 것처럼.
처음에 단순한 신호였다. '밥 먹자'는 밥을 먹자는 뜻이고, '잘 자'는 이제 자도 좋다는 간단한 표시. 그때는 직설적이고 단순했다. 시간이 흐르며,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 걱정하는 마음, 평안을 바라는 감정이 되었다. 이제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얽히고,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 이루어진 관계가 되고 삶이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는 단순한 게 없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사람의 시간이 묻어나고, 그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드러낸다. 말은 움직인다. 고정된 틀을 벗어나, 삶과 감정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고, 살아 숨 쉬는 존재로 우리 앞에 놓인다. 그래서 우리는 말 속에서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 사람이 지나온 길을 읽어낼 수 있다.
시대가 바뀌면 말도 변한다. 말은 욕망과 두려움, 사랑과 분노가 오가는 시대의 얼굴을 비추는 유동적인 표면이다. 전쟁의 시대에는 전쟁을 묘사하는 말이, 평화의 시대에는 평화를 노래하는 말이 태어난다. 가난의 시대에는 결핍을 나타내는 말이, 풍요의 시대에는 넘침을 나타내는 말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말에는 감정이 녹아있다. 사람마다 다르게 다양한 얼굴이다.
어떤 말은 유행을 타고 금세 사라지지만, 다른 말은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그런 말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나 생각을 담고,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절의 말들이 모여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말은 곧 체제의 언어가 된다.
사람을 오래 떠올릴 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사람의 눈동자 색이나 걸음걸이보다, 그가 했던 말을 먼저 기억하게 된다. 문장의 모양이 아니라, 말이 나올 때의 망설임, 그 말이 도착하던 순간의 공기 같은 것. "너한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 말을 누군가가 했을 때, 우리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를 다 알지 못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좋지 않았던 날들 속에서 꺼내온 말이라는 걸, 오래 고민한 끝에야 입에 올릴 수 있었던 말이라는 걸,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우리는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그래서 말은, 기억보다도 오래 남는다. 아무리 많이 걸었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함께 보았어도, 말로 남기지 않으면 어떤 시간은 지나가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에, 편지를 쓰고, 일기를 남기고, 통화를 끝내지 못한 채 다시 전화를 건다. 말이야말로 시간을 저장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누구나 본능처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했던 말이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 말이 문득 떠오르는 바람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 피어나기도 한다. 말은 그렇게,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불러내고,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마음을 조용히 되돌려주기도 한다. 말의 리듬 속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그리고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까지도 함께 남는다.
처음 보는 이에게 이름을 말하고, 날씨를 말하고, 조금 더 가까워지면 마음을 말한다.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어떤 말은 끝이 되고, 어떤 말은 시작이 된다. 그래서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다 써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사람을. 우리는 말로 관계를 맺는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도 결국 말이다. 화해를 이룬 날, 그날을 기억하게 만드는 건 표정이 아니라 “미안해”라는 말이다. 반대로, 떠나간 사람이 남긴 것도 대개 말이다. “그럼 잘 있어.” 짧은 말이 시간을 넘는다. 누군가를 끝내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대개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통해서다. 말은 그 사람의 세계다.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 생각이 맴돌던 언저리, 사랑이 한때 지나간 풍경. 말은 그것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 삶을 견디는 방식까지도. 그래서 사람의 말은 그 사람만큼이나 복잡하고 고요하며, 조용히 아프다.
한 시절이 끝나고 난 뒤에도 남는 건 결국 말이다. 사람도, 기억도 흐려지지만, 말은 흐릿한 대기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불쑥 떠오르고, 또 누군가의 입을 빌려 다시 살아난다. 말은 기억을, 감정을, 관계를, 삶과 시간을 품고 지나가는, 우리의 유일한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며 서로를 이해하고, 오해하고, 때로는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돌아선다. 그 모든 흐름 안에, 말은 흐르고 있다. 전부는 언제나 조용히 흐른다.
그렇게, 말이 지나간 자리를 더듬는 일은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누군가의 말이 남긴 흔적 위를, 천천히, 조심스레 밟아가며 우리는 어제와 오늘을 잇는다. 아직 말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말은 끝났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거기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했던 방식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그 말들이 했던 일을 떠올린다. 한 사람을 위로했던 말, 마음을 오해하게 만들었던 말, 되돌릴 수 없게 만들어버린 말. 그 말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시간이 스며 있고, 마음이 엉켜 있다. 말은 그래서, 기억과 감정과 후회의 총합이다. 어떤 말들은 그 사람의 생 전체를 한순간에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말들은 끝내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의 문턱에 서 있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은 그 말들을 되새기기 위해 글을 쓴다. 지나간 대화의 여운을 되짚기 위해, 혹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과 마주서기 위해. 말이 남긴 것들을 천천히 기록하는 일. 그것이 누군가를 사랑한 이후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문장을 쓰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말이 도착하지 못한 자리에, 여전히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언젠가 꼭 도착할지도 모르는 말에 대한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