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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거짓말에 끌릴까?

생존의 기술

by inome

우리는 왜 거짓말에 매혹되는 걸까. 거짓말은 왜 때로는 정직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일까. 사람들은 늘 말한다. 정직이 미덕이라고. 거짓말은 나쁘다고. 오직 정직해야만 바른 길을 갈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 앞에서 이 믿음은 쉽게 흔들린다. 눈앞의 성공과 부를 위해, 불편한 진실보다 기꺼이 거짓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장 확실한 거짓말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결국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정직과 거짓처럼 선명하게 가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거짓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진실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따뜻하며, 오히려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 누군가를 해치지 않기 위해 감춘 말, 다치지 않게 하려는 작은 왜곡. 그것들은 분명 거짓이지만, 동시에 진실보다 더 많은 것을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끝을 흐리고, 문장을 빙빙 돌리거나, 때로는 묻지도 않은 대답을 피할 때조차, 그것은 단순한 회피가 아닐 수 있다. 안심시키려는 작은 배려일 수도 있고, 오래 품고 싶은 감정을 지키려는 방식일 수도 있다. 밤늦게 돌아온 아이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도, 퇴근 후 가장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별일 없었어”라고 말할 때도,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있다. 진짜 삶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깊은 바다의 물고기는 자신의 등을 자갈처럼 바꾼다. 먼저 색이 달라지고, 이어 모양이 변한다. 거센 조류가 몰아쳐도 물고기는 돌멩이처럼 바닥에 머문다. 곤충은 낙엽의 주름을 흉내 내며, 햇살이 바뀌어도 발자국이 다가와도 가만히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들키지 않는 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새들은 둥지를 비워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양서류는 몸집을 부풀려 다른 생명체의 울음을 흉내 낸다. 그들은 말하지 않지만, 말보다 더 정직한 방식으로 세계에 응답한다.

공작은 계절을 앞두고 깃털을 손질한다. 빛이 스치면 그 무늬는 환상처럼 휘어진다. 눈으로는 알 수 없다. 이 공작이 건강한지, 어떤 유전자를 품었는지. 그러나 생명은 이미 알고 있다. 보여지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에 얼마나 깊은 간극이 있는지를. 꽃 역시 벌을 유혹하기 위해 향을 뿜고, 색을 바꾸며, 꽃잎의 곡선을 조율한다. 나비는 눈동자 같은 무늬를 만들고, 나방은 침묵 속에서 방향을 바꾼다. 우리는 그것을 침묵이라 부르지만, 그 안에는 수백만 번의 계산과 조정이 숨어 있다. 말이 없다는 건 소리의 부재일 뿐, 정직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들은 감추고, 덮고, 다르게 보이려는 방식으로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도 이와 닮았다. 그것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거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오래전부터 터득해온 생존의 기술이다. 눈에 띄지 않게 시간을 버티고, 위협 앞에서 몸을 숨기며, 틈 사이로 자신을 비껴가게 하는 법. 말 이전의 방식, 본능의 기억. 보여지는 것과 감춰지는 것,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선택과 오차. 그것이 우리가 ‘거짓’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이다. 그래서 거짓말 안에는 애틋함, 두려움, 미련 같은 감정이 함께 깃든다.

솔직한 얼굴을 드러내기에는 세상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기준은 지나치게 날카롭다. 소속을 원하고, 인정을 바라며, 어딘가에 머물 자격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작용한다. 결핍은 숨겨지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성취는 앞당겨 이야기된다. 타인을 위한 것이든, 자신을 위한 것이든, 거짓말은 말의 안쪽과 바깥,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그래서 거짓말은 더 이상 단순히 나쁘다고만 평가할 수 없다. 자신을 숨기고, 사랑을 감추며, 고백을 미루는 일. 때로는 진실이 너무 멀거나 무거울 때, 가장 가까운 거짓이 선택된다. 다치지 않기 위해, 잃지 않기 위해. 그 순간 선택된 거짓은 마음을 지탱하는 작은 버팀목이 된다.

거짓 없는 세상? 그것은 아마도 현실에서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현실을 조금씩 비틀며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생존을 위해, 관계를 위해, 감정을 위해. 그 모든 것이 거짓의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설적으로 정직하고 단순한 세계를 꿈꾼다. 비록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지라도, 그 동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함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어쩌면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계를 계속 살아가는 힘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선택들은 즉각적인 의미를 주지 못할지라도, 쌓이고 이어져 언젠가 우리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진실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리는 거짓말을 사용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회피로 보이고, 다른 이에게는 생존의 방식이 된다. 거짓말은 방향을 바꾸거나 관계를 지탱하는 힘을 갖지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거짓은 단순한 방편에서 출발하지만, 때로는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이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삶에는 균열이 생긴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표정이 어긋나고, 미래의 예측은 점점 불확실해진다. 우리는 그 균열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퍼즐 조각은 서로 다른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은 선악으로만 나눌 수 없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다. 모든 거짓에는 진실을 숨기거나, 조금 비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모든 순간을 사실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세상은 본래 예측할 수 없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진실과 거짓은 그 속에서 나란히 흐르며, 우리의 삶을 함께 구성한다.

차라리 ‘진리’가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삶은 훨씬 단순해지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쉽게 알았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주저 없이 원하는 길을 향해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참’이라 부르는 것들 중 상당수는 시간이 흐르면 틀렸다는 판정을 받는다. 어떤 이론은 반박되고, 어떤 믿음은 조용히 폐기된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도구일 뿐, 그 자체로 진리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완전한 도구를 놓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익숙한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안정을 느낀다. 사람은 익숙함을 작은 우주처럼 꾸려내고, 그 안에서 자신을 길들인다. 그것이 때로는 감옥이 될지라도 말이다.

언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 경험에도 지각에도 닿지 않으며, 시간과 문화, 사회의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는 실재. 하지만 아직, 누구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말하는 진실은 참에 닿으려는 서툰 모방이거나 애쓴 비유일 뿐이다. 그래서 참은 여전히 도달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 남아 있고, 우리가 손에 쥔 것은 참과 오류, 사실과 왜곡이 얽힌 인식뿐이다. 세상은 그 얽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분하려 애쓴다.

거짓말은 바로 그 얽힘 속에서 생겨난다. 오래전에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고, 어떤 때는 관계를 지키기 위한 은폐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않기 위해, 혹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민 방패였던 적도 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 흔적은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거짓은 생존의 도구였으나, 동시에 오해와 침묵, 왜곡된 마음의 지도를 남기며 사람을 흔들었다.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는 어지러운 길 위에서 선택은 반복된다. 진실을 향한 조용한 의지와 균형을 찾아가는 느린 발걸음. 그 어긋남 속에서 비로소 우리가 선 자리의 의미가 생겨난다.

사람은 종종 자기 선택의 결과를 후회한다. 잘못되었다는 말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평가다. 정직을 택했든, 거짓을 택했든, 결국 결과가 모든 것을 판가름한다. 사소한 일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큰 이익이 걸려 있거나, 많은 사람의 생명이 얽힌 자리에서는 과정은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사람은 조용히 사실을 비튼다. 말 한두 마디를 덧붙이고, 어떤 장면은 흐리게 지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진짜 기억은 멀어지고, 바꿔놓은 이야기가 오히려 더 익숙해진다. 거짓말은 때때로 죄책감을 누그러뜨리는 약처럼 작용한다. 그리고 모든 거짓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하려는 말도 있다. “괜찮아.” “잘 어울려.” 그것들은 진심은 아닐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더 나은 진실이 된다. 진실은 반드시 사실일 필요가 없다. 어떤 진실은 너무 무겁다. 가볍게 빗겨가는 말이 오히려 사람을 지켜줄 때가 있다.

거짓말은 생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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