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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정의, 나의 신념

악법도 법?

by inome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누군가의 말도, 책에서 읽은 문장도 아닌,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확신 같은 것. 틀리지 않았다고, 이번만큼은 옳았다고 스스로를 믿고 싶어지는 때. 어쩌면 그것은 자만이 아니라, 불확실한 삶 위에 얇게 놓인 외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믿지 않으면 건널 수 없고, 건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

길을 걷다 보면 자주 흔들린다. 이 길이 맞는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지만, 어디쯤은 닿고 싶어 계속 걸어간다. 그러다 가끔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택이 뜻밖의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일이 있다. 그런 순간이면, 마음은 어딘가 조심스럽게 작고 둥근 돌 하나를 내려놓는다. 이번에는 괜찮았다고,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고. 그 돌은 흙에 파묻히지 않고 남아서, 다음 돌이 놓일 자리를 조심스레 비워둔다.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쌓인 돌들이 하나의 형상이 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무게, 설명할 수 없는 모양. 어떤 날은 그것이 삶을 지탱하고, 어떤 날은 그것을 붙들어 간신히 하루를 넘긴다. 그래서 언젠가,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런 말을 하게 된다. 해봐서 안다고. 그 말에는 지나온 시간이 묻어 있다.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라, 수도 없이 무너질 뻔한 순간마다 가까스로 일어났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세상이 다시 흔들린다 해도, 그 말만은 끝까지 놓치고 싶어지는 조용한 믿음 같은 것이다.

이런 자신감은 처음부터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생겨났을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서 그 믿음을 말하고 싶어 한다. 말이 닿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감각이 찾아온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흔들리는 마음이 된다.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확신은 늘 다른 사람의 얼굴을 거쳐 돌아온다. 나만의 생각 같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비슷한 생각을 품었던 이들과 마주치고,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 생긴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은 둘이 되고, 또 셋이 되며, 언젠가 어떤 집단의 믿음이 된다. 신념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정지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시간과 사람을 따라 다시 쓰이고 다시 말해진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이 길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어떤 옳음도 따지고 보면 단순한 직감이나 몇 번의 경험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개인적인 확신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을 들여다보면 사회와 문화, 오래된 시간 속을 흘러온 이야기들이 엉켜 있다. 사람은 늘 그런 것들 속에서 자라났고, 그런 것들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자리한 믿음은 스스로 쌓아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오래전부터 심어진 것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실패와 성공, 수없이 반복된 사건들 속에서 어떤 이는 본 것을 믿었고, 또 어떤 이는 보고 싶은 것을 믿었다. 그렇게 생긴 확신은 점점 단단한 모양을 띠게 되었지만, 그 단단함은 진실 때문이 아니라 반복 때문이었다.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듯 보이지만, 그 바닥에는 사회가 건네 온 말들, 배우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던 가치들이 조용히 깔려 있었다.

신념이란 건, 그래서 때로는 허구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허구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간도 있다. 누가 만들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했던 믿음이었을 테니까.

살아가며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이미 누군가의 시선과 오래된 관습을 통과한 것들이다. 좋다고 여기는 것도, 옳다고 믿는 것도, 그 사회가 말해온 기대와 규칙 속에서 조금씩 모양을 바꾼다. 어느 날, 불공정을 겪은 사람이 공정을 요구하기 시작할 때, 그 말은 단지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가 틀렸다고 느낀 순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믿음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방향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진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 누군가는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공감이 생기고, 동조가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개인적인 감정이 모여 하나의 이름을 얻는다. 정의라는 말. 모두가 아는 것처럼 말해지는 단어.

그 말 속에는 수많은 경험들이 깃들어 있다. 상처 입은 자리에서 나온 목소리, 반복된 침묵 속에서 자란 불편함, 그리고 마침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확신. 공정함을 외치는 말들은 그렇게 어느 집단의 공통된 가치가 된다. 당연한 상식은, 사실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아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뒤늦게 이해한 진실이었던 것들이, 오랜 시간 끝에 비로소 하나의 기준이 된 것이다.

어쩌면 정의는 살아남은 신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오래 반복되고, 어떤 생각이 끝내 외면당하지 않은 채 남겨질 때, 그것은 법이 되고 규범이 되며, 마침내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이 된다. 평등이라는 말. 처음엔 누구에게도 똑같지 않았던 그것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고, 다시 제도 속으로 들어가 사회권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의라는 말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바뀌는 세계 안에서 만들어지고, 다시 부서지고, 또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한 시대의 문제들이 어떤 생각을 불러오고, 그 생각이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방식으로. 평등이라는 개념이 그랬다. 어떤 시대에는 계급의 붕괴를, 어떤 시대에는 기회의 평등을, 또 어떤 시대에는 차별을 지우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말은 같았지만, 그 말이 가리키던 것들은 매번 달랐다.

그렇게 보면 정의란, 불평등이라는 현실과 계속 부딪혀온 이야기다. 불공정이라는 감정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그 감정을 말로 바꾸고, 말은 다시 믿음으로 바뀐다. 믿음은 하나의 흐름이 되어 시대를 통과하고, 그렇게 해서 사회는 다시 새로운 합의에 도달한다. 개중에 어떤 가치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가치가 다음 시대의 정의가 된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늘 같지 않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람에 따라 정의는 공정이 되기도 하고, 복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모호한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정의는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어낼 수 있었다. 뚜렷하지 않아서 오래 살아남았고, 정확하지 않아서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의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정의라 부를 수 있을까. 보편적이고 타당하다고 믿어온 기준조차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정의가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 믿음이야말로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다소 기만적이고 불완전한 약속인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기준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도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려 애쓰는 것. 그 나눔이 없으면, 모든 존재는 제각기 고립되고 말 것이다.

‘정의’라는 개념은 고대부터 단지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구체적인 질서의 기준, 행위의 정당성, 권위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라틴어 ‘유스툼(justum)’은 오늘날의 ‘정당한’ 혹은 ‘공정한’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이 단어는 단순히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명령(jussum)—즉 사회적으로 부과된 규범적 요구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명령하다'는 뜻의 '유베오(jubeo)'는 ‘유숨(jussum, 명령된 것)’을 낳고, 다시 그것이 '정의로운 것(justum)'의 어원이 되었다. 말하자면, 정의로운 것은 어떤 명령 혹은 질서에 따라 규정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유스(jus, 법)'에도 이어진다. 정의는 그 자체로 초월적인 덕목이라기보다, 특정 권위에 의해 정립된 사회적 기준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 개념은 그리스어 '디카이온(δίκαιον)'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된다. 이 단어는 ‘법에 부합하는 것’, 또는 ‘법적으로 정당한 것’을 의미하며, ‘디케(δίκη, 정의의 여신)’는 단순한 덕목이 아닌 법적 분쟁에서의 판단 기준을 상징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어 ‘레흐트(recht)’는 ‘곧음’, 즉 사물이 제 자리에 있는 상태를 뜻하며, 프랑스어 ‘라 쥬스티스(la justice)’는 개별 행위의 도덕성보다는 사회 제도 속의 질서를 가리킨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에서 ‘정의’는 대부분 법, 명령, 제도,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으며, 이 개념들은 단순히 도덕적 선이 아니라 규범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구조의 일부로 기능해왔다. 다만, 이 연관이 곧바로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은 특정 사건을 다루는 절차가 아니라 사전에 마련된 질서로 기능한다. 규칙 또한 마찬가지로,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 이전에 설정된 체계를 가리킨다.

정의는 스스로 옳음을 증명하는 개념이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옳음을 따르려는 행위에 더 가깝다. 개인의 행동은 법과 규범을 통해 조정되며, 그에 대한 복종의 태도 속에서 정의는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상적인 덕목이라기보다, 정의는 제도화된 옳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에게도 정의가 적용될 수 있을까? 노예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패배한 전쟁 포로나 범죄자라는 이유로 신분이 정해지고,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제도적으로 배제된다. 사회적 지위는 부여되지 않으며, 법적으로 매매 가능한 재산으로 간주된다. 법적 질서로서의 노예제는 주인에게는 분명 유리한 체계다. 하지만 노예에게는 부당한 현실이었다.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정의라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노예제 사회의 경우 법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노예가 법을 따르지 않으면 기존의 사회 질서와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복종이 강요된다. 이 구조 안에서 정의는 법이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그 법에 복종하는 자세로서 이해된다. 옳음은 고정된 진리로 존재하기보다, 따를 수 있는 틀로 제시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스스로 모순을 품는다. 노예제 사회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면, 노예에게 ‘옳음’은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데 있다. 제도는 이 ‘옳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존재하지만, 법은 노예를 물건처럼 취급한다. 제도는 그의 감정과 선택을 논의의 영역 밖으로 밀어낸다. 신분이 정해지는 순간, 한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기능하는 사물로 전락한다.

자신을 인간이라 여기는 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법과 질서에 순응하기 어렵다. 그 상태에서 법을 따르는 행위가 정의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인간 이하로 간주해야 한다. 복종이 정의의 조건이 되고, 자각은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법을 비판하거나 바꿀 수 있는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 저항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주인의 결단이 없다면 제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구조는 갈등 없이 반복되고, 외견상 평화는 지속된다. 주인과 노예는 변하지 않는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인다.

이 질서를 정의의 실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법을 지키는 일이 반드시 정의를 따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체계를 공정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법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 믿는다. 또 다른 이는 부당한 법에 저항하는 것이 정의라 여긴다. 충돌의 지점에서, 어느 쪽 사고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사람들은 종종 자유를 실현한다는 걸,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삶을 이끄는 일이라고 여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렇게 사는 일은 자기 신념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고, 때로는 모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권리―이를테면 인권―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 행동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개인의 판단이 곧바로 정의에 이르는 건 아니다.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믿더라도,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억압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인간으로서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 본능이 사회 전체의 동의와 만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을 정의라고 부른다.

노예가 부당한 법과 제도에 맞서 싸운 것도 마찬가지다. 억압에 저항하는 행동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가장 근원적인 몸짓이다. 정의는 언제나 그런 순간, 개인의 삶과 사회의 질서가 어긋나는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일은 과거 노예제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정권에 맞섰던 사람들에게도 같은 마음이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불합리한 법과 제도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 언젠가 반드시 저항해왔다. 역사의 장면들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법을 그대로 따랐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문장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부당함조차 받아들이라는 체념이 그 짧은 말 안에 묻어 있다. 그 문장을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철학을 이유로 재판을 받고, 끝내 죽음을 받아들였던 한 사람. 소크라테스. 흔히 그의 결정을 부당한 법 앞에서의 순종으로 읽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의 선택에는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고집이 더 컸다. '크리톤'에 남겨진 짧은 대화들이 그것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선고가 내려진 뒤, 소크라테스에게는 탈출을 도우려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그것은 체념이라기보다는 오래 생각해 온 어떤 원칙에 대한 결단이었다. 부당한 재판을 고발하려는 것도, 죽음을 피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살아오는 동안 스스로 세워온 기준을 마지막까지 따르려 했다. 겉으로 보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과 닮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재판이 흘러간 방식과, 그에게 제시되었던 조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그의 죄명은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를 죽이려 하진 않았다. 그래서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철학은 그에게 단지 삶의 조건이 아니라, 지켜야 할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신에게 복종하겠다. 내 목숨이 다하는 한, 절대로 지식을 포기하지 않겠다."
그 말은 배심원들이 내민 타협을 스스로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그가 복종한 것은 법의 명령이 아니라 평생 지켜온 어떤 원칙이었다. 탈출을 거부한 것도 준법 때문이 아니었다. 지키고자 했던 것은 생명이 아니라, 모순 없는 삶이었다.

그 판단은 하나의 경계를 분명히 나눴다. 불의를 행하라는 명령과, 불의를 당하라는 명령 사이. 소크라테스는 전자를 거부했고, 후자를 수용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그 질문의 답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독한 예로서 삶을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탈출을 선택했다면, 철학은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철학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삶과 말이 서로를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외부에서 주어진 죄의 이름이 아니라, 내부에서 이루어낸 논리의 완결로서. 범죄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고, 말과 삶이 일치할 수 있다는 신념을 끝까지 증명하고자 했다. 그 재판은 한 인간이 어떻게 법 앞에서 스스로를 해명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법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정의는 종종 법에 대한 복종, 즉 준법의 태도로 간주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부당함을 인식하고 그에 응답하려는 태도까지 아우를 때, 정의는 비로소 살아 있는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 집행은 단순한 절차의 이행을 넘어, 그 지시와 실행이 정당성을 확보하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정당성은 누구에게나 납득 가능한 타당성에서 출발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법의 권위는 비로소 자신의 무게를 갖는다. 그러나 정의를 구성하는 과정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신념은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지만, 집단 속에서 확산되거나 제도에 포섭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의를 둘러싼 논의는 때로 공전하며,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긴 시간을 요구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 태도에서 정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단정할 수 없다. 어쩌면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신념은, 그것이 아무리 확고해 보일지라도, 언제나 결과에 대한 보장을 갖지 못한 채 불확실성 속을 지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끝내 옳다고 믿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일로 남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신념은, 때로는 그것을 붙잡은 사람의 생을 지탱하는 발판이 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낯선 긴장이나 위협으로 읽히기도 한다. 믿는다는 행위는 언제나 그런 양면성을 품는다. 그리고 어떤 삶은, 그 양면성의 흔들림 속에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옳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옳다고 믿을 수 있었느냐는 물음이다.

개인의 신념과 사회적 규범 사이의 관계는 생각이상으로 복잡하다. 1989년 10월, 파리 외곽 크레이의 한 중학교에서 세 명의 여학생이 히잡을 쓰고 교실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머리 위에는 단지 천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두 개의 세계가 나란히 얹혀 있었다. 교사는 학교 규정에 따라 히잡을 벗을 것을 요구했고, 학생들은 그것이 자신의 믿음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규칙을 둘러싼 이 작은 대화는 곧 퇴학이라는 결정으로 이어졌고, 이 조치는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프랑스 사회는 묻기 시작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공공의 질서인가, 아니면 개인의 신념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는 퇴학 결정을 철회했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수업 시간 동안만큼은 히잡을 벗는다는 것이었다. 이 타협은 문제를 잠재우지 못했고, 오히려 질문들을 더 많이 남겼다. 그 후 10여 년 동안 프랑스 사회는 이 문제를 반복해서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스타지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공공기관 내에서 종교적 상징이 어떤 위치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거기 담겨 있었다.

1년 뒤인 2004년 3월 15일, 프랑스 의회는 공립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종교적 상징물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히잡뿐 아니라, 키파와 터번처럼 뚜렷한 상징들을 모두 같은 선에 놓았다. 프랑스는 그렇게 결정했다. 모든 신념이 평등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신념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평등을 지키겠다는 입장이었다. 공공의 장소에서는 누구의 신앙도 표시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는 자유보다 공적 질서를 먼저 두는 쪽을 선택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가들이 벌인 저항은, 개인의 신념이 어떻게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고, 그 충돌이 어떻게 제도의 변화를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당시 미국은 인종 분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었고, 흑인은 버스의 좌석, 학교의 입학, 식당의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현실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로자 파크스, 그리고 이름 없이 싸운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고, 교회에서, 학교에서, 법정에서 차별에 맞섰다.

그들의 신념은 단순한 도덕적 외침이 아니었다. 헌법이 보장한 평등의 원리를 현실 속에 구현하려는 정치적 실천이었다. 그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불심검문과 체포, 구타와 투옥이 반복되었고, 어떤 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이 견디고 버틴 시간은 1964년의 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권법이라는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그 시작이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당시에 외쳤던 말들은 점차 법률의 문장 속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급진적으로 보였던 요구들이 사회의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과거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어느새 제도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회는 법과 제도를 통해 개인의 행동을 일정한 틀 안에 두려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틀을 넘어서는 목소리가 등장하고, 그 목소리는 기존의 질서에 균열을 낸다. 오늘날 ‘정의’는 하나의 해석으로 묶을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는 일종의 강제력이기도 하지만, 그 강제만으로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대체할 수는 없다.

정해진 규범 속에서만 움직이는 인간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익숙한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은 단순한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힘이 되어왔다. 프랑스의 히잡 논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처럼, 기존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한 개인들의 움직임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가는지를 드러낸다. 정의는 늘 현재의 제도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법은 사회 질서를 위한 장치이지만,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다. 시대가 바뀌면 법도 달라지고,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법이 불의한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개인의 신념은 정체된 규범을 흔들고,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외연을 넓힌다. 제도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저항하거나 반응하며 끊임없이 조정된다.

역사는 정해진 기준에 순응한 기록보다, 그 기준을 의심하고 새롭게 쓰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기존의 정의를 낡은 것으로 만들었고, 사회는 그 질문을 통과하면서 다른 형태의 정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의는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과정이다. 논의와 저항, 타협과 수정을 거치며 형성되는 이 원칙은, 제도와 법이 스스로를 되묻고 갱신할 수 있을 때에만 살아남는다. 정의는 고정된 규범의 수용이 아니라, 불합리함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출발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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