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점에 들르기 전, 해야 할 의식

원트와 라이크를 구분하기

by 초록

우리 가족은 에버랜드와 레고랜드 연간회원권을 가지고 있다.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은 가까운 편이라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문득 내일을 잊게 되는 문라이트 퍼레이드를 보고 싶을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레고랜드는 일 년에 몇 번만 가도 연간회원권 뽕은 뽑고도 남기에, 질렀다. 정말 교통체증은 최악인 장소이지만, 레고랜드 자체는 나쁘지 않다. 갑자기 이 얘기가 왜 나왔냐 하면, 에버랜드 혹은 레고랜드를 가기 전에 하는 남편과 아이만의 의식(?)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살 거야. 아이스크림이나 팝콘 정도는 살 수 있어."


"오늘은 원하는 장난감 작은 거 하나 사도 돼."


특별한 날(예-어린이날)이 있거나, 그럴듯한 이유(예-모인 돈이 꽤 되거나)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고 통보하는 날이 많다. 사실,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번 저렇게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했지만, 점점 달라졌다. 좀 더 어릴 때는 뭐 사달라는 게 없어 걱정(?)이었는데, 6살이 되니 슬슬 이것저것 사달라고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미리 저렇게 남편과 아이만의 의식을 치르고 가면 확실히 떼가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 말하듯이 저건 남편과 아이만의 의식이다. 나와 아이의 의식이 아니다.

난 기본적으로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마음이 강한 편이다.


"어머, 이거 세일이래. 마침 필요하지 않았어?"


"어머, 이거 너무 디자인이 예쁘다. 식탁에 두고 사용하면 되지 않겠어?"


그렇다, 실용성만으로는 살기 각박한 세상 아닌가?

그리고 보통 아이들은, 눈치가 기가 막히기 때문에 드러누워야 할 자리와 눈치 챙겨야 할 자리를 구분한다. 우리 아이는 기념품점에서 내가 있을 때는, 드러눕는다. 아는 거다. 엄마를. 잘 구슬리면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본 거다.


권금성을 내려와 신흥사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신흥사 기념품점으로 향했다.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사리라는 나의 생각은 내 말과 행동으로 은연중에 섞여 나왔을 거다. 그리고는 흘러 흘러 아이에게 갔는지, 아이는 입구를 슥 둘러보자마자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이거 사자."


바람이 불 때마다 나붓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물고기가 달린 풍경종이었다.


'어, 창문에 걸어 두면 괜찮겠는데......?'


속으로 드는 생각에 순간, 멈칫하며 아무 말을 못 하니 아이는 본격적으로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이거 사서 가져가자."


"음, 창문에 걸어두면 좋을 거 같긴 한데 방금 들어왔으니까 한 번 구경하면서 생각해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를 가벼이 넘기며 이것저것 기념품점의 소품들을 구경했다.


'아, 양가 부모님들 드릴 때 필요한 예쁜 돈봉투를 살까?'


'아니다, 예쁜 술잔을 사볼까?'


멈칫, 멈칫. 한 번에 나아가질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는 꽤 진득하니 기다려주었다. 드디어 한 바퀴를 다 돌고 난 후, 다시 돌아온 입구에서 아이는 부드럽게 다시 말했다.


"엄마, 이제 다 구경했으니까 이거 사고 나가자."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아까 그 물고기 풍경종이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저렴하지 않은 가격과 창문에서 계속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꽤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았다.


"음, 엄마가 구경하면서 생각해 봤는데 일단 이건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그리고 소리가 계속 나서 시끄러울 거 같아."


"그럼..... 이건 어때? 이건 얼마야?"


아이는 꽤 진중한 모습으로 좀 더 작은 풍경종을 가리켰다.


사실, 이제는 풍경종을 살 마음이 전혀 없어졌다. 나는.


"아니야. 풍경종은 아닌 거 같아. 저건 집에 걸어두면 모두가 함께 보고 들어야 하니까 안돼. 복덩이한테만 필요한 걸로 다시 골라보자."


그리고, 떼는 시작되었다. 시작이 잘못되었단 걸 알았으나 이미 늦었고, 설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강대강의 대결이었다. 본격적인 대결을 위해 밖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아이는 사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속에서 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골라냈다. 늘 그렇듯이 아이는 지갑이 없기에 내가 이겼다.


이겼지만,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기에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집(속초)에 돌아와 모처럼 일찍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책을 꺼냈다.

며칠 전, 문우당서림에서 왠지 모르게 끌려서 집어 든 책에 오늘의 일과 딱 맞는 내용이 나왔다.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김경일>> ,122p
많은 사람이 원트를 라이크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라이크가 없는 원트는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그게 직업이든 사람이든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원하기만 하는지, 아니면 원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는지. 내 시간, 내 노력, 심지어 내 돈까지 쏟아부어서 내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 보려면, 그것을 안 가지고 있어도 조금도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보세요. 그럼 내가 정말 그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 원트와 라이크를 구별하게 해 주는 건 다양한 경험입니다.


이렇게 정리를 잘해주실 수 있나요? 와, 너무 감사합니다.

밑줄 쫙쫙 그어 놓은 후, 다음 날 바로 아이에게 다시 기념품점에서의 상황을 설명 해주었다. 아이는 원트만 있었기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종에 대한 '원트'는 희석되다 못해 사라져 있었다.


가끔(아주 가끔), 남편이 참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어른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원트와 라이크를 진작에 구분하고 아이에게도 구분시켜 주려는 남편이 참 듬직했다.


사실, 이런 일이 있다고 해서 내가 바로 원트와 라이크를 구분하진 않는다. 살면서 원트와 라이크로 돈지랄을 하는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아니라면 죄송......)

그래도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이 날 이후로는 그래도 기념품점에 들어가기 전에 나도 아이와 의식을 치른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살 거야."


그렇지만, 아직 덜 자란 내 안의 나는 조금의 여지를 둔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필요한 걸 발견하거나, 정말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면 좀 고민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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