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때 더 기분 좋은 그 말.
열은 잡혔는데, 아이가 밤새 다리가 아프다고 잠을 설쳤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두었으나 암막커튼이 없는 관계로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눈에 직빵으로 와닿기에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침이 왔음을 느낄 수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로 우리는 일찍 일어났다, 또...... 정신은 깼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 무서운 상황에서 아이랑 계속 이야기했다.
"설악 케이블카 타? 말아."
"가자, 엄마 일어나 빨리!"
"그런데 너 새벽에 계속 다리 아프다고 깼잖아. 근데 산을 어떻게 올라가?"
"아아- 지금은 괜찮아!"
"그럼 오늘 밤에 또 아플 거 아니야, 엄마는 더는 못 버텨."
"그럼 오늘 뭐 할라고? 복덩이랑 계-속 집에서 놀을라고?"
아이도 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상황을. 결국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이고 냅다 *설악 케이블카를 향해 출발을 했다. 케이블카에 탑승하면서도' 다리가 아프다고 한 애를 데려온 건 잘한 짓일까, 엄마한테 말하면 또 욕먹겠지'라는 생각이 휘몰아쳤는데 웬걸, 내리자마자 권금성을 향해 날아간다. 이것이 바로 축지법인가.
*권금성에는 돌이 많았다. 바위산은 가본 경험이 없기에 잔뜩 들뜬 아이 손을 꼭 잡고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 바위를 타고 다녔다. 작은 돌로 소원탑을 만들어 놓은 구역에서 소원탑을 쌓고, 돌로 돌에 그림을 그리고...... 내가 바라던 상황이다. 엄마나 아빠 같은 성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연에서 놀잇감을 찾아 노는 상황. 와, 그런데 숨이 막힌다. 죽을 것 같다. 바위와 높은 습도 그리고 땡볕의 조화는 강력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맥반석 구운 계란이 되어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살살 꼬드겨 (약간의 협박은 덤.) 드디어 권금성을 탈출했다. 엄마 갬성인 *신흥사도 둘러보고 신흥사 박물관에서 시원한 관람을 마쳤다.(기념품 판매점에서 혼낸 것도 안 비밀.)
밥 먹기 싫다는(진짜 안 먹이고 싶다, 나도.) 아이를 이끌고 *권금성 식당을 갔다. (권금성을 다녀왔으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갔다.) 목이 아파서 따듯한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단호히 말하는 아이에게 이 날씨에 따듯한 음식이 뭐가 있겠냐 했는데 마침 잔치국수가 있었다. 와, 세상의 모든 신에게 아리가또.
후루룩후루룩 잘 먹고 나오니 몸이 급격히 노곤해진다. 아이가 피곤할 때 나오는 특유의 막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 놀겠다며 떼쓰는 아이를 들쳐 매고 카시트에 앉혔다. 아이가 혼자 또 막 웃기 시작한다. 무섭다.
"거봐, 엄마가 아까부터 가자고 했잖아! 얼른 자 그냥!"
쓴소리를 날리니 웬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맞아, 근데 오늘 참 재미있었다. 그치?"
이럴 때 잠시 숙연해진다.
"...... 응, 엄마도 재미있었어. 복덩이도 진짜 재밌었나 보네."
"진짜 재밌었어, 내일 또, 아니 다음에 또 오자."
자동차 시동을 켜고 주차라인에서 차를 빼는 순간 아이는 잠에 빠졌다.
아이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야 했기에 점심 먹고, 오후 2시에는 나와야지-했는데 오후 4시 30분에 겨우 빠져나오게 되었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내가 재밌었고, 내가 행복했던 것보다 더 재밌고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아이가 느끼는 즐거움이, 그 행복이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이고 행복이 된다니.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던 감정이다.
아이가 헤드뱅잉 하지 않게 천천히, 느긋하게 집(속초)으로 왔다. 보통 차가 멈추면 잠들었더라도 눈을 뜨곤 했는데, 오늘은 카시트에서 아이를 빼는 순간까지도 눈을 뜨지 못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오늘은 어떤 기억장소로 보내졌을까. 오래오래 저장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두고두고 꺼내 볼 '재미'로 추억되길 바란다.
*설악 케이블카: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 내에서 탑승하여 권금성 근처까지 간다. 케이블카에서 하차 후 약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권금성이 나온다. 가족 단위(남녀노소)로 함께 가기 무난하다. 금액은 꽤 비싼 편이나 경치가 꽤 좋아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 (왕복 성인-16,000원, 소인-12,000원) 우리가 탑승하기 열흘 전에 케이블카가 멈춘 사고가 있어서 걱정이 되긴 했으나 호기심이 먼저라 그냥 탔다.
*권금성: 아이랑 종종 뒷산에 올라가는 편인데, 바위산은 경험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굉장히 좋아했다. 큰 바위 위에 올라가 발아래에 놓인 풍경에 감탄을 했다. 살짝 안개가 껴도 멋질 풍경이다.
*신흥사(신흥사 박물관): 종교는 없으나 소싯적 엄마를 따라 절을 다닌 짬밥이 있기도 하고, 절이라는 공간을 좋아해서 여행에 동선이 겹치면 방문하곤 한다. 기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약간의 돈과 기도를 드렸다. 신흥사 박물관은 더운 열기를 가라앉히며 구경하기에 좋았다.
*권금성 식당: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 내에 식당이 꽤 여러 개 있다. 맛은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생각을 해 특별히 다른 후기를 찾아보진 않고 그냥 들어간 식당이다. 여름이었으나 너무 고맙게도 잔치국수가 있었다. 비빔밥에 잔치국수로 든든히 한 끼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