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지,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몇 년 전, '축제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에버랜드의 도발에 넘어가 축제에 집착하던 시절(사실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화천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유명한 [얼음나라화천 산천어축제]에 가기 위해서였다.
산천어가 그렇게 큰 줄도 몰랐고,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도 아무런 관심이 없던 시절 이런저런 사실을 알게 된 후 받은 충격보다 더 강렬하게 남은 기억이 있다.
바로 화천의 막걸리다. 아이를 낳고 난 후로 바뀐 입맛에는 주류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다른 술은 숙취도 더 세고 안주랑 같이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한데 막걸리는 괜찮았다. 그 이후로 다른 지역에 방문할 이유가 생길 때마다 소소한 낙으로 각 지역의 막거리를 마시고 있는데 화천의 막걸리가 정말 기가 막혔다. 이 가격에, 이 맛에, 이 양이라니. 여기가 천국이구나를 외치며 남편을 향해 시조를 읊어댔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화천에 살어리랏다'
그 이후로 잊고 있던 다른 지역에 살고 싶은 욕망은 '속초'에서 다시 살아났다. 언덕이 많아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는 도로, 작은 지역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바다와 카페, 맛집들까지. 도서관과 서점도 갖추어져 있고 대형마트와 훌륭한 시장까지! 그러나 기시감이 느껴지던 순간들이 [속초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먼저, 아이가 아프던 날, 강릉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고래 책방'에서 골목길을 따라 이동을 하던 중에는 내가 다른 나라로 순간이동을 한 줄 알았다. 꺼져 있는 간판의 불빛들, 간간히 켜진 불빛에는 삼삼오오 모여있는 특정 국가의 외국인들, 흘끔흘끔 오가던 그들과 나의 시선 사이에는 비슷한 종류의 생각이 오고 갔을 거다. '쟤는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거지?'와 같은 의아함 말이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다시 강릉이 펼쳐졌다.
다음은 *속초 수산관광시장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슬러시를 사고, 감자전을 구경하며 오징어순대를 구입하기 위해 계단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 마주한 시장의 골목길은 푸껫의 야시장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나라' 시장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조리하고 응대하는 사람들이 달랐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더운 여름, 밤바다를 걸으며 마주한 타국의 이들은 때때로 무례하고 위협적이기도 했다. 쓰레기를 발로 뻥 차며 무리를 지어 걷는 모습은 아이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이어져야 한다거나,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결혼해야 한다거나, 타국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오는 게 싫다는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과는 다르다. 그저 내가 아는 대한민국이, 내가 아는 속초가 사라지는 것이 서글펐다. 사실 내가 아는 속초가 진짜 '속초'냐 물으면 그것 또한 할 말은 없다. 이번에 손자와 딸을 따라 20여 년 만에 다시 속초를 방문한 우리 엄마는 '속초'가 많이 변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속초의 마지막 저녁, *알찬 생선구이라는 식당을 방문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누리며 갔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동명항의 <오징어 난전> 맞은편에 위치한 이 식당 주변으로는 걷는 이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간판만 남아 있는 한식뷔페 집을 지나, 누군가의 일터였을 혹은 누군가의 배를 채워주었을 깨진 문들을 지나 간 생선구이집은 꽤 입에 잘 맞았다. 사장님은 옆 가게 사장님과 함께 동명항 오징어 난전의 위생 관련 영업정지로 한탄을 하고 계셨고, 우리가 들어오고 나갈 때까지 식당 앞을 지나는 이도,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이도 더 이상 없었다.
가게를 나와 다시 골목길을 걸으며 슬그머니 이런 곳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만 좇기엔 세상의 험한 일면을 알게 된 지라, cctv도 없는 골목길을 누비며 깨진 문들이 자리한 동네를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그 골목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어떤 속초를, 대한민국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마냥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커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어린아이와 성인이 되었을 내 아이와 함께 속초를 다시 방문하고 싶다. 지금의 나의 엄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속초' 많이 변했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며느리 입장은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자, 그건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말이 아니니.)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많이 누리고 싶다. 오래도록. 우리 아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고 그렇게 이어질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