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부츠는 어디에서 왔을까?
발이 시려울 땐, 있는 신발 중에 가장 두꺼운 것으로!
어릴 때부터 옷 입는 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유행이 뭔지에 관심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날도 평소와 같이 외출할 때 늘 입던 바지 (스판이 있는 달라붙는 청바지, 스키니진까진 아니지만 일자바지)를 입고 나갔다.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요즘엔 그런 바지 안 입어, 답답하잖아."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항상 트레이닝복, 펑퍼짐한 원피스를 즐겨 입었기에 오랜만에 나간 외출에 6살 정도 나이 든 청바지를 입었기 때문일까. 나는 6년 전에 산 청바지도 아직 맞는다며 기분이 꽤 좋았던 거 같다.
그럼 무슨 바지를 입냐는 물음을 던지며 친구의 옷을 살펴보니 굉장히 편해 보이는 골덴바지에 맨투맨 티셔츠, 멋스러운 조끼를 걸쳤다. 한참을 수다 떨고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다. 다리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사람이 안 보인다.
분명 2-3년 전만 해도 어느 정도 입었던 거 같은데, 그럼 모두가 입던 스키니진과 일자바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유행을 따라간다는 건 내가 신경 쓰는 많은 것들 사이에 '의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며 나의 많은 소비 중에 '의류'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나는 그걸 따라갈 의지도 자신도 없었지만 편한 바지가 유행이라니 유행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겠네- 싶었다가 서글퍼졌다. 사람이 만든 유행이 다른 사람을 소비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유행을 만들어 다시 소비를 하게 하고. 이 순환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생기고 그로 인해 우리의 환경이 악화되는지 알고는 못 그럴 테다. 그러니 많이 알려야 한다, 계속. 한두 번 듣고 바뀔 생각이었으면 지구가 이지경까지 안 왔겠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본인 컨디션만 괜찮으면 "놀이터 가"를 외쳐대는 나의 아이를 위해 미리 당근으로 아기털부츠를 장만했다. 마침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정말 잘했다며 나 스스로를 칭찬했고, 어김없이 또 우린 놀이터로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내 발이었다.
출산의 영향인지, 발가락 사이로 찬 바람이 스며들어오는 거 같은데 마침 동네 이웃이 털 신발을 선물 받았다며 자랑한다. 운명이다 이건. 하나 사서 오-래 쓰면 괜찮지 않을까? 소비요정이 유혹을 시작한다.
유혹을 따라 어그 하나 사볼까 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저 어그는 누구 털일까? 뭘로 만들었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물음.
당장 검색을 해보니 바로 연관검색어에 양털, 양가죽이 뜬다. 어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내 시린 발을 감싸줄 따듯한 신발 하나쯤은 누군가 비건으로 만들고 있지 않을까- 싶어 비건 신발을 검색한다. 다행이다, 있다. 그런데 수입제품이다.
와- 코로나 시국에 저 신발이 택배 상자에 곱게 담겨 우리 집 앞까지 오려면 1월은 되어 있겠다.
바로 포기하기로 한다. 난 성격이 급하니까. 양말 두 겹 신지 뭐.
덕분에 돈도 굳고 탄소도 굳었다. 집에 좀 두툼한 운동화가 있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