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 :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소소하게 배우는 강의가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이라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그림책 작업을 해보고 싶어 관련 강의를 찾아보다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동화 쓰기 수업에 신청을 했다. 내가 생각한 그림책은 아니었지만 꽤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는데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생겼다.
브런치로 가볍게 음식을 먹은 후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무엇을 시킬까, 메뉴를 보며 고민을 하다 아이스 라테를 시켰다. 덥지는 않지만 아직은 아이스 음료가 더 당기는 10월 말. 대부분 아이스음료를 선택했고, 친절한 수강생 중 한 명은 아이스 음료의 수만큼 종이 빨대를 챙겨 왔다. 나는 종이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쟁반 위에 그대로 두었는데 그 모습을 본 모임에 나온 사람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왜요? 거북이나 물고기들이 아파할 거 같아 안 쓰는 거예요?"
웃음기 띈 얼굴로 말한 그 문장이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생각할수록 묘하게 기분이 나쁘기도 해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걸 수도 있다.
동화 쓰기 수업이니 아마추어라도 동화 한 편을 쓰고 자신의 쓴 동화 주제와 관련된 짧은 설명을 한 뒤 합평을 받는다. 나도 고민 끝에 쓴 내 동화의 주제와 의도를 설명하고자 현재 내 몸과 환경을 위해 동물성식품을 줄이는 중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이 때는 아직 내 꿈은 할머니라고 못 박기 전이었다.) 이러한 나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빨대도 사용하지 않는 건가?라는 궁금증에서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완벽한 '비건'도 아니고 환경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저 사람은 대체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하는 걸까? 그냥 빨대만 아끼는 걸까?'라는 생각을 가질까 봐 자격지심을 느낀 걸까.
아니면 똑똑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보이는 그 사람의 분위기에 요즘 내 모습과 비교가 되어 열등감이 느껴졌던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정확한 건 저 말이 기억에 남았다는 것.
비슷한 일화는 또 있다.
아이와 제주도에서 한 달을 지냈는데, 약 보름간은 급격히 친해진 이웃의 가족도 함께 숙소를 공유했다. 제주도에서 지낸 지 이틀째, 주방에서 남은 자잘한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이웃이 새 비닐봉지를 뜯으며 나에게 건넸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왜요? 언니 주방 쓰레기 정리할 때 봉지 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주방 한 켠에 봉지를 준비해 두고 달걀껍데기, 소스가 묻은 봉지 같은 쓰레기를 넣는다. 거실에서 사용하는 쓰레기통에 넣으면 여름 같은 때는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다만 저 상황에서 걸리는 점이 있었다면 새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딸려온 자잘한 봉지 혹은 아이 외출 시 사용했던 비닐봉지가 남아 있을 경우에만 사용한다.
당시 구구절절이 설명을 하기엔 뭔가 구차하다고 느껴졌고 아이 둘이 징징거리고 있어 그냥 아무 말 없이 새 비닐봉지를 받아 정리를 했던 기억이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몇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다른 생각과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몇 달 후에 돌아보면 꽤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지금 글을 쓰며 다시 생각을 가다듬을 때 외출 시 비닐봉지를 사용한 것, 마트에서 봉지를 딸려오게 만드는 것이 모순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은 코로나와 육아휴직으로 한정된 생활권 속에 살고 있지만 앞으로 나를 알던, 내 기존 생활을 아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이걸 얼마나 또 어디까지 어느 정도 가까운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아마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나는 또 귀찮음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며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예전의 내 모습을 보여주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돌이켜 보고 반성하고 되짚으면 된다. 귀찮음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내가 할 말을 정리하고 내 행동을 수정하면 된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난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런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