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서 먹을거리를 선택하세요
제철음식, 탄소, 기후위기, 지구
최근에 지인의 추천으로 '노임팩트맨'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건 아니므로 간단히 얘기하면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삶을 1년간 살아본 가족의 이야기이다. 어렵지 않은 내용에 본인의 경험을 담은 에피소드라 술술 읽어나갔는데 이 중 음식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내가 이용하는 마트와 탄소의 상관관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식단을 되짚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음식을 만드는 행위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발자국이 길게 이어져있다. 만약 내가 감자채볶음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나는 감자를 사러 장을 보러 가야 한다. 장을 보러 갈 때 여러 음식을 사기 위해 대형 마트를 이용할 수 있다, 보통 이 경우에는 자동차로 이동을 한다.
마트에 도착한 후, 실한 감자를 찾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가성비를 택할 수도 있겠다. 여러 조건을 따져 뭐니 뭐니 해도 감자는 강원도라며 강원도에서 태어나 내가 이용하는 마트까지 여행을 온 감자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할인을 하고 있다. 마침 집에 과일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오렌지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반찬을 만들고 저녁과 과일을 먹었을 때, 내가 만든 탄소 발자국은 마트에서 우리 집까지 인 걸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마트에 들어오는 다양한 물품들은 각자의 생산지에서 마트로 들어오기까지의 탄소발자국을 가진다. 강원도 감자의 경우는 강원도에서 중간 유통지, 그리고 마트가 될 것이고 캘리포니아 오렌지의 경우는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경유지를 거친 후, 최종 목적지인 마트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가족은 제철음식을 활용한 음식만을 해 먹기로 한다. 그것도 반경 400킬로미터에서 나오는 음식으로만.
아이를 낳고 이유식을 시작하며 좋은 재료를 구입하여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는데, 그중 접근성이 제일 좋은 곳이 [한살림]이다. 동네에 있는 한살림은 좀 작은 편이라 다양한 재료는 없지만 아파트 단지 앞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바로 있다.
원재료와 무농약 혹은 유기농 표시 등 원래는 제일 싼 거만 사던 내가 아이가 먹을 음식을 고르며 식재료 하나하나 신중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한살림에는 다른 마트보다 특이한 표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가까운 먹을거리]. 내가 한살림에서 식재료를 사게 됨으로써 탄소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숫자로 알려주고, 줄어든 거리(km) 또한 시각적으로 잘 들어오게 배치하였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한살림의 식재료에 쓰여 있는 숫자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다, 바로 눈에 보이는 정보들인데 알아야 제대로 보인다니.
최근에는 필요한 재료들만 그때그때 사 오는 편이라 나는 자주 한살림과 하나로마트를 자주 가는데 특히 한살림은 월(月)이 달라졌다는 걸 눈으로 실감한다. 계절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다. 전면에 전시된 야채들의 종류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워낙 계절과 상관없이 하우스에서 야채나 과일이 잘 자라 제철음식의 개념이 희미해졌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진 기후가 키우는 제철 식재료는 그 영양분이 남다르기 마련이다.(내가 쓰면서도 어디서 들은 말이다- 싶었는데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문득 궁금해져서 초록창에 [제철음식]을 쳐봤다. 주르륵. 제철음식의 종류와 효능이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되어 있다. 제철음식보다 제철과일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편이었는데 정보의 바다에서 들어 올린 표에는 과일과 야채, 해산물 등이 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지구를 위한 선택을 세 번은 할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혹은 아점, 저녁 약간의 간식. 모든 선택을 지구를 위해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장보기를 할 때 좀 더 신경 쓸 수는 없을까?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제철음식을 사서 요리하고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를 느껴간다는 건, 또 지구를 위해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요리하는 나 자신이 숭고해 보이는 꽤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