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Feb 20. 2023

내 머릿속의 백순대

빡빡하게 사지 맙시다, 거 참... '고기'가 땡길 때도 있는 거지

 대부분의 영양소를 채소나 곡류, 과일 등의 식물성 음식으로 섭취하고 있다. 또한 같이 사는 가족뿐만이 아니라 멀리 있는 가족, 가까운 주변인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를 함께 먹거나 주문할 때 "우린 이거 먹을 건데 괜찮아?(고기가 잔뜩 들어간 피자, 삼겹살에 소주 한잔 등)"라고 물어보기도 하니 주변사람들에게 나는 [채식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있는 거 같다.

 나름 균형 있는 식단을 유지하며 정크채식에서 멀어진 지 2-3달째. 이상하게 다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약 삼일 정도를 힘들어하다가 2주 뒤 끊어질 거 같은 허리와 배에 느껴지는 아릿함으로 그때의 허기짐은 배란기 때문이었구나라고 지나가듯이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생리통이 없어졌었는데 다시 시작된 생리통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다시 시간은 흘렀고, 문득 끊임없이 군것질을 하며 무언가 먹을 것을 찾는 나를 인식한 순간. 배란기가 또 왔음을 알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찬장 문을 열었다 닫았다. 난 무엇이 먹고 싶은 걸까- 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는데 딱히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없어 머리만 지끈거렸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생리통. 두 달째 이어진 생리통에 결국 잊고 있던 약을 사러 약국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 큰길로 나가는데 맞은편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게 보였다.


[순대 먹는 날]


아아,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순대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간판을 본 그 순간,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선 오직 [순대]만이 떠돌아다녔다. 다른 무언가를 들어올 틈이 없이 오로지 [순대]였다. 그 와중에 구체적으로 [백순대볶음]이 먹고 싶었다.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고 한참을 망설이다 '배달의 민족'을 켜고 배민 1로 백순대 볶음을 시켰다. 마침 남편도 출장이라 아기와 둘이 복닥거리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기에 적당한 핑곗거리도 되었다.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한 백순대볶음을 한입 넣는 순간, 아이에게 향하던 짜증과 생리통마저 싹 잊히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날 저녁, 괜히 찝찝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이야기를 했다.


"나 오늘 뭐 먹었는지 알아?"

"뭐 먹었는데?"

"순대, 백순대 볶음 시켜 먹었어. ㅎ 민망하네."

"너 몸이 원하는가 보지, 순대나 고기도 먹고 싶으면 먹어."


남편은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겠지만 나에겐 참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난 내 스스로를 [비건]이나 [채식주의자]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 노력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내가 행동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었다. 백순대볶음을 시켜 먹은 것도 좀 창피하고 자수하고 광명 찾자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먼저 말한 거였는데... 내가 듣고 싶던 말이 있었나 보다.


 고기를 지양하자고 정했고, 필요 이상으로 먹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이게 참, 애매했다. 어디까지가 필요한 거고 어디서부터가 필요이상인 건지.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그렇게 약 이틀간  백순대볶음을 혼자 다 먹은 다음 달은 생리통도 없고 두통도 없었다.

내가 영양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보며 한 끼 한 끼 정성을 다해 먹는 것도 아니니 아마 분명 어딘가에서 빵꾸가 난 영양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게 내 몸을 힘들게 했고 백순대볶음이 나의 빵꾸난 영양분을 메꿔준 거라면 모든 생각과 시선을 떠나 나는 잘 먹은 게 맞다.

난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두 달에 한 번은 족발이나 백순대볶음을 먹는다. 특히 배란기 때. 이게 나의 심심한 식생활에 도피처가 되었든 빵꾸난 영양분을 메꿔주는 훌륭한 음식이 되었든 어쨌든 땡길 때는 먹는다.

내가 매일매일 땡긴다는 것도 아니고... 두 달에 한 번 먹겠다는데 내가 나에게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같았다.


 최근 모임에서 무언가를 먹는 주문을 할 때, "그거(고기 들어간 메뉴)시켜, 나도 먹을 거야"라고 말하니 사람들이 "이거를? 괜찮아? 너도 먹을 수 있는 걸로 시키자."라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친절하게 말했다. 그래서 난 약간 흠칫하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답했다.

"아니 나도 먹고 싶어서 그래."


'고기'가 땡길때도 있는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