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한 우리의 식탁을 소개합니다
방탕하다 : 2. 마음이 들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복직을 하며 각오했다. 모든 반찬을 해 먹을 수 없을 테지만 적어도 인스턴트 음식만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자고.
내가 만든 최후의 보루(인스턴트음식)는 스트레스라는 흔하지만 거대한 적에게 무너져 약 이주 만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버리고 만다.
너무 피곤해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고, 너무 먹고 싶어서 엽기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입맛이 없어진 날은 나의 소울메이트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먹으며 잠깐 반성을 했다가 편의점에서 새로운 2+1 먹거리를 찾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은- 개뿔. 되는대로 먹었고 방탕하게 먹었다.
남편은 반년만에 다시 코로나를 맞이했고, 아이는 8시 30분부터 석식을 먹은 후 6시 30분 하원시간까지 이어지는 긴 어린이집 생활에 감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깨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가, 버스에서도 이어지는 일에 빈속에 멀미로 인한 구토가 이어졌다. 피로에 쩔은 몸은 짧은 주말 잠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아 그냥 하루하루 버텼다. 그리고 제법 복직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문득 내가 밥 먹는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참치김치삼각김밥, 육개장컵라면, 치토스, 엔초>
두 달 내내 이어진 방탕한 식탁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 식탁 앞에 앉아 밥 먹는 나 자신이 머쓱했다.
그리고 남편이 직접 담근 막걸리에 그 머쓱함은 다시 한켠에 묻어두었다. 막걸리를 주식으로 삼은 날들이 약 한 달간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지 약 세 달 여가 지나고 이제야 반성의 일기를 쓴다.
무엇에 마음이 들떠 갈피를 못 잡았는지, 이리저리 헤매다 지난주부터 다시 푸른 식탁으로 돌아가고자 신경을 쓰고 있다. 세상에는 나를 위로해 주는 많은 음식이 있지만 사실 정말 위로를 받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번에는 좀 더 느긋하게 여러 겹으로 만들어 본다.
첫 번째 방어선은 일주일에 하루는 반찬 한 가지라도 하기 (안 하다 보니까 안 하게 된다.)
두 번째 방어선은 반찬 사기
세 번째 방어선은 제철음식으로 외식하기
이번에도 최후의 보루는 인스턴트 음식이다. 내가 만든 방어선은 어떻게 무너지게 될 것인가.
(무너질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나는 융통성이란 것이 있는 사람이니까.)
우리 식탁에 푸릇함이 다시 피어오르길 바라며. 내가 만든 음식을 해 먹는 즐거움이 나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이기길 바라며.
모든 직장인들의 식탁에, 모든 가정의 식탁에 건강이 오를 수 있기를 바라며.
결국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함임을 알아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