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랑 자전거로 등하원이 가능해요?
면허가 있지만, 없습니다
나는 쫄보다. 정말 이 말만큼 딱 떨어지는 표현이 있을까? 겁쟁이, 소심함 등 여러 단어로 섞어 표현하지 않아도 저 한 마디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쫄보'구나 하고 무언가 더 설명할 것 없이 '쫄보'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깜짝 놀라는 것에 화를 내고 깜깜한 밤 길을 걸어갈 때 미어캣이 되며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외에도 내가 쫄보임을 나타낼 수 있는 예시가 있으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여기서 접어야겠다.
아이가 18개월 즈음, 한창 덥던 2022년 7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집에서 3.5km 떨어진 곳에 아이가 다니는 직장어린이집이 있다. 자차로 이동할 경우 약 10분, 버스로 이동할 경우 도보 시간 포함하여 약 30분. 애매한 거리에 근처 민간 어린이집으로 할까 생각했지만 워킹맘들의 안식처라는 직장 어린이집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일단 보내고 생각하기로 했다.
18개월 무렵이라 잘 걷긴 했지만 횡단보도도 길고 많아 아이가 계속 걷기엔 무리가 있어 숨겨놨던 아기띠를 꺼내 버스로 등하원을 했다. 네이버 지도는 버스로 하원하면 30분의 시간이 걸린다 했지만 아기를 안고 천천히 걷다 보니 40분 정도가 걸렸다. 11kg 가까이 되는 아이를 매일 1시간 20분씩 안고 이동하다 보니 어느 날은 허리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어 결석을 하기도 했다. 다른 방안이 필요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하던 중 알게 된 자전거 등원! 뒤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탄다니 난 쫄보지만 허리가 너무 아팠기에 무조건 시도해 보기로 했다.
유아 안장을 비롯한 안전장비를 구입하고, 아파트 근처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감을 익히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를 맞이할 때부터 자전거 등하원이 시작되었다.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어 다행이었는데 약 15분이 걸린다고 나왔던 이 길은 실제로 아이와 가니 25분 정도가 걸렸다.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아이가 덜컹거림을 덜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갔기 때문인데 가는 길에 그늘이 전혀 없어 뙤약볕에 얼굴은 타들어가고 몸에는 땀이 흥건해졌었다. 그래도 2주 정도 지나니 아이의 무게와 자전거, 길이 모두 몸에 익었고 뜨거운 햇빛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제법 아이랑 자전거 타는 길이 즐거워졌다.
그렇게 두 달여를 열심히 자전거로 달렸는데, 복병은 날씨였다. 비 내리는 날도 제법 있었고, 겨울에는 눈과 바람, 얼어붙은 길 등 모든 게 다 문제가 될 거였다. 안전 문제로 겨울에는 자전거로 등하원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운전면허를 땄다. 두 번 정도 실패할 것을 예상했으나 한 번에 면허를 따버렸다. 그렇지만 내 차로 운전을 해서 다니는 건 면허를 따는 것보다 백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 같은 쫄보에게는. 면허를 땄지만 운전을 할 수 없었고 아직 날씨는 너무 좋았기에 계속 자전거로 등하원을 했는데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네 주민은 참다 궁금해졌는지 우연히 만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편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왜 복덩이(아이 태명)네는 자전거로 어린이집 다녀요?"
"아, 아내가 운전을 못 해서 그렇습니다."
이런 멋대가리 없는 남편 같으니라고.
내가 자전거 등하원을 시작한 이유는 '운전을 할 수 없어서'가 맞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아이랑 자전거로 등하원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시간이 갈수록 사그라드는 햇살의 따스함, 시간이 갈수록 차가워지는 바람의 온도와 반짝거리는 나뭇잎, 무언가를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의 소리. 모든 것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인위적인 에너지를 소비하며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에너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도 생겼다.
버스로 하원하는 요즘, 하원 후 걸어가는 길에 우리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던 자리를 보며 아이는 말한다.
"엄마 자전거 없네?"
"응, 추운 겨울이라 복덩이도 엄마도 다칠까 봐 자전거는 집에 있지."
"추워서 그래? 자전거 타자"
"바람이 따뜻해지면 타자! 엄마도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