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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Jan 20. 2023

건강한 채식은 멀고도 귀찮다

'고기'와 멀어지기는 성공, 그다음은...?

 '고기'를 '고기'로만 생각하기가 어렵게 된 후로, 먼저 '고기'라고 불리는 것을 끊었다.

 처음엔 쉬웠다. 두부를 구워 먹으면 되었고, 버섯을 구워 먹었고, 여린 야채잎을 사다 비벼 먹었다. 좀 질릴 때쯤, 친정엄마가 주셨던 말린 해초가 생각나 함께 비벼먹기도 했다.

문제는, 허함이었다. 분명 먹었는데 뱃속에 들어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얼마나 먹어야 이 허함이 사라질까 궁금하기도 해 계속 먹어봤다. 확실히 곡류를 많이 섭취하면 허함이 채워지는 거 같았는데, 꽤 많이 먹어야 하는 게 문제였다. 

 어느 순간부터 입맛이 없어지며 살기 위해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배가 고프면 라면을 먹기 시작했는데 나에게 라면이란, 살기 위해 먹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였다. (보통 술 먹고 들어온 날 먹는...?)

그래도 신경 쓴다고 풀무원 정면을 사 먹었다. 정 입맛이 없을 때는 막걸리에 부추전, 막걸리에 김치전을 먹었다. 그러면 꽤 산다는 느낌을 받았던 거 같다. 


 채식을 하면 살이 빠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데 나는 뱃살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예 동물성 식품을 끊은 것도 아닌데.. 대체 '비건'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궁금함이 생겼다. 그래서 비건 요리책을 빌려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무엇을 먹고 사는지 검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정크채식을 하는 중이었다는 걸.

이러면 적어도 '고기'는 끊을 수 있을지라도 일단 내 몸이 건강하지 않을 거 같았다. 또한 나의 꿈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정크채식을 끝내고자 마음을 먹은 후, 찌든 내 입맛을 되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었다. 내가 안 먹었을 뿐이지 세상엔 많은 야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마음에 새로운 야채들을 사 왔는데, 이 식재료들은 어찌 되었을까? 한두 번 먹어본 후 바로 냉장고에서 신선하게 썩어갔다. 이로 인하여 생기는 음식물쓰레기가 상당했다. '퇴근하고 잠깐 마트 들러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사 와'라고 남긴 내 카톡에 놀란 남편이 벌써 사둔 걸 다 썼냐며 전화할 정도였으니까. 


 나,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환경이 어쩌구 내 꿈이 저쩌구..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다녔고 창피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식단을 짰다. 원래는 먹고 싶은 것 위주로 그때그때 해 먹었는데, 냉장고에 있는 자료를 먼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을 해먹을지 정하고 장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식재료들이 생긴다면 식단을 다시 수정하거나, 한 번에 볶아서 혹은 비벼서 먹는다. 이렇게 하니 확실히 음식물쓰레기도 줄었고 무엇보다 식비가 줄었다. 원래도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잘 먹는 편이 아니었지만 식재료로 낭비되는 부분이 꽤 많았나 보다. 가계부도 함께 작성하다 보니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


 요리를 해 먹는다는 거 자체가 귀찮은 일이지만 야채를 요리하는 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흔히 먹는 '고기'의 경우는 손질된 상태로 포장이 되니 바로 구워 먹거나 볶아 먹거나 하면 되는데 야채는 그렇지 않다. 어쨌든 물에 헹궈서 씻어야 하며 다듬기도 해야 한다. 말린 야채의 경우에는 물에 불리거나 폭 끓여 익히는 과정이 추가된다. 처음에는 야채를 어디를 손질하고 씻어야 하는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를 몰라 옆에 태블릿을 놓고 검색을 하며 정리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웬만한 야채는 보지 않고 손질할 수 있고 오래 보관하는 방법도 안다. 냉장고 안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는 편은 아니지만 물이 든 통 안에 있는 콩나물, 불린 고사리나 시래기와 같은 재료를 보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고기'를 끊기로 결심하고 약 3달 만에 맞이한 결과물이라 표현해도 괜찮을까. 


 매주 일요일이면 난 식단을 짠다. 아이의 어린이집 식단표를 보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적어둔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서운하지 않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기도 한다. 부족한 영양소는 없는지를 확인한 후 (물론 난 영양사가 아니니 깊게 확인하진 않는다. ) 식재료가 과하게 사용되지 않았는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장보기 목록을 쓰고 그 옆에 내가 만들어야 할 반찬을 적는다. 글로 적으니 꽤 복잡하고 긴 시간이 걸릴 거 같다. 물론 실제로 처음에는 그랬다. 다 검색해야 했으니까. 지금은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아이가 잠든 일요일 밤 약 15분 정도. 냉장고도 정리하며 우리가 먹을 음식을 생각해 보는 시간. 별 거 아닌 이 시간이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발자국이 푸르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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