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Apr 23. 2023

답은 정해져 있다

"종이가 아까우니까요"

 생태전환교육이 필수가 되며 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환경기념의 날을 중심으로 한 생태전환교육을 하게 되었다. 만 5세 반을 꾸려가며 유치원 내 다른 연령들(만 3,4세)보다는 환경교육을 통한 변화와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에 나름 부담감 속에서 하루하루 환경을 위한 행동변화를 은근히 드러내놓고 있다.  그러다 3월 23일 물의 날을 맞아 교육지원청에서 기후변화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를 배정해 주어 특별수업이 열리게 되었다.

 기후변화교육을 위하여 오신 강사 두 분은 화려하고 다양한 참여를 유도하는 시각자료와 함께 열정적인 강의를 진행해 주셨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다면 연령을 고려하지 못한 열정적인 수업이라 아이들이 분위기를 통해 이해하지 강사의 말을 통해 [물의 날]이라는 교육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령 "물이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내가 가진 소중한 물방울을 붙여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한 줄로 나열한 각종 직업들을 늘어놓는다면, 배려심이 깊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짧은 인생을 통해 눈치라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앞에 친구가 물방울을 건네지 않은,  물방울이 없는 직업에게 주려고 고민을 하게 된다. 그건 나(아이들)의 생각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다정하고 공평한가. 

그렇지만 나 또한 이 직업 n년차. 굳이 더 듣지 않아도 이 수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알고 있었기에 "물방울이 없는 곳에 주지 않아도 돼, 내 생각대로 주면 되는 거야."라고 강사님의 수업에 끼어들며 한 마디를 건넸다. 아이들은 "어, 그래요?"라고 말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각자의 생각대로 물방울을 붙였다.

결과는 미용사 3표, 소방관 2표, 농부 1표, 세차장 1표 등으로 나왔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현타가 오는 순간이 종종 온다.
가령 이번과 같은 상황. 결과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강사의 마음은 나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은 의례적으로 물을 아껴요, 종이를 아껴 써요, 분리수거를 잘해야 해요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한다. 마치 구구단을 외는 것처럼.

외운 지식이, 태도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 일까, 아니 외운 지식은 태도가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놀이를 시작했다. 놀이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재질과 크기의 종이를 교실 내에 비치해 두었다. 장수를 직접 세보진 않았으나 못해도 100장 가까이 되었을 거다. 이 종이는 이틀 만에 동이 나버렸다.
직접 접은 비행기가 수북이 쌓여 비행기 가게를 열기도 하고 동생반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비행기를 접는 과정에서 잘못 접었다며 아직 멀쩡한 종이가 재활용쓰레기통에 쌓여가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놀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두고 봐야 하는 일인가? 적당히 아껴 쓰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건가, 그 적당히라는 것은 양으로 따지면 몇 장을 뜻하는 걸까?
고민을 하다 일단 좀 더 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종이들 또한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방과후시간이 되기 전에 동이 났다. 결국 "종이가 너무 낭비되는 거 같아, 우리 한번 재활용 쓰레기통을 살펴보자."라고 시작된 말은 길어질수록 아이들이 앉은 자세는 흐트러졌고,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 시작할 때의 마음은 교육이었으나 이야기가 끝난 후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본 나의 교육은 잔소리로 끝이 난 거 같았다. 찝찝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습관적으로 모아 놓던 [종이조각함]을 뒤적이며 정리하는데 한 아이가 종이조각함에서 하얀색 종이 조각을 가져갔다. 기쁜 마음으로 "종이조각으로 사용해도 되는 거야? 정말 괜찮아?"라고 묻자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종이가 아깝다면서요, 저는 여기 조금만 오려서 사용할 거라 괜찮아요."라고 시원하게 대답한 아이의 말에 며칠 동안 묵은 찝찝함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걸 느끼며 환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걸 괜찮냐고 물은 나도 이상하다. 그냥 웃어주고 그 아이의 수고스러운 행동을 (눈에 보이는 큰 하얀 종이를 가져가지 않고 조각종이함에서 하얀색 종이를 찾은 행동) 알아준 걸로 충분할 텐데 말이다.
 그래도 참 기쁘다. 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행동이 여러 행정 일에 지쳐가는 나에게 '교사'로서의 자세를, 지구를 생각하는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사실 내가 하는 물음 중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해야 하는 답이 정해져 있다. 나는 어떠한 목표를 정했고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잘 따라오고 있나 혹은 문제는 없나 정도를 확인하면서.

그리고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 더 이상 자원을 당겨 쓰지 않는 것. 조금 불편하게 지내는 것. 


 그래도 난 여전히 찝찝하다,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 이 길이 맞는 건지, 

정말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