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서 10분간 판 땅을 도로 메꿔야 하는 억울함
자유놀이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포켓몬의 이름들.
포켓몬뿐만이 아니다. 반반유치원,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와 같은 알 수 없는 게임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전체이용가이니 딱히 제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그냥 넘기기엔 몹시 찝찝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특히 흥미를 가질만한 무언가가 없을 때, 마땅히 놀 거리가 없을 때 보이는 특징.
첫 번째, 게임 이야기를 한다.
두 번째, 아기놀이 혹은 강아지&고양이 놀이를 한다.
그렇다, 난 이 '찝찝한'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지금 관심을 가지고 몰입할 만한 무언가를 못 찾아 게임과 아기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던 거다.
물론 무려 7살 형님반이니 게임 이야기가 아예 없을 수 없고 가끔 아기놀이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닌 며칠 째 지속되고 있는 놀이라는 것.
아이들의 놀이에서 배움을 찾아야 하는데... 찾아야 하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고민을 하며 단위활동으로 이끌어가던 중, 어김없이 나간 바깥놀이에서 물웅덩이를 파던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는데 문득 시계를 쳐다보던 남자아이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시계 보세요. 정리시간 다 된 거 같아요"
삽을 파던 자세에서 흘끗 손목시계를 보니 정말이다. 긴 바늘이 5자에 가 있었다. 정리 시간이 된 것에 어이없음을 느끼며 "아니, 거의 다 팠는데 정리 시간이면 어떡해"라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와버렸다.
그렇다, 정리시간이 되면 정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아, 이거 기껏 만들었는데.."
"선생님, 진짜 딱 여기까지만 할게요, 조금만요"
놀이의 지속성을 위해 교실에서는 만든 놀잇감들을 전시하거나 정리를 하지 않은 채로 둔다. 그런데, 바깥놀이터라는 이유로 10분 넘게 파던 자리를 다시 메꾸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 않은가.
"얘들아, 너무 억울하지 않니?"
"뭐가요?"
"아니 이렇게 크게 만들어놨는데, 다음에 또 파야 하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바깥놀이터에도 전시할 수 있어요?"
모르겠다, 바깥놀이터에도 전시를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안고 들어오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여태까지 아이들이 파 놓은 많은 구덩이들은 메꿨는데 유독 저 물웅덩이가 되고 싶었던 한 구덩이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내가 직접 팠기 때문인 걸까.
어쨌든 끝까지 모르던 것보다 한 달이나 지났지만 이제라도 아이들의 억울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가진다. 바깥놀이터에도 전시를 할 수 있을까? 바깥놀이터에 전시를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