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원래 덥다
그래도 어찌어찌 6월까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지낼만했다.
유치원에 있을 때도 아침은 서늘해서 괜찮았고, 오전 동안은 교실 내에 있는 선풍기만 돌려도 제법 시원해졌으며 오후에 교무실에서 일할 때에도 선풍기로 버틸만했다.
가족이 함께 있는 저녁 시간은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고 이른 장마도 찾아왔기에 습하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7월부터였다. 비가 와도 너무 왔다. 장마로 인한 피해가 곳곳에서 나왔고 잠깐 나오는 햇살에 반가움을 느낄 만큼 흐린 날이 이어졌다.
곧 습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6월과는 차원이 달랐다. 후덥지근한 공기 중에 퍼붓는 비는 쾌적함을 주지 못했고 물기가 많은 공기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사계절 중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 하면 '여름'을 선택하는 나지만, 이런 '여름'이라면 선뜻 고르지 못할 정도로 날씨에 기분과 체력이 바닥나는 나날이 이어졌다.
7월을 맞이하며 남편이 먼저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고 못 이기는 척 냅뒀다.
퇴근 후, 집에 와 저녁 7시쯤에 에어컨을 틀고 자기 전 9시 30분쯤 에어컨을 끄면 제법 쾌적해져 잠들기 좋았다. 자다가 더위가 느껴졌을 때는 잠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리면 딱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잠을 자기 힘들어했다. 너무 안 놀았나-?, 체력이 남아서 그런가 싶어 열심히 같이 놀고 누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며칠을 끙끙대며 애를 재우려다 내가 먼저 잠드는 날이 늘어날 때쯤, 아이가 한 마디 했다.
"엄마, 너무 더워요."
아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말을 했다.
"여름이라서 그래. 여름은 원래 더워."
"아니야, 에어컨 틀어줘. 너무 더워서 잠이 안 와."
우리 아이 다 컸네. 이렇게 자기 생각과 요구를 잘 말할 줄도 알고.
더위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짠-한 마음이 생겨 에어컨을 제습모드로 틀었다.
약 10분 뒤 아이는 곤히 잠이 들었고, 아이 책상 위에 놓인 온습도계는 26.4도/ 67%를 가리키고 있었다. (틀기 전에는 27.1도/ 78%였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잠들 때가 되면 에어컨을 틀어 달라고 했다.
애가 안 자면 힘들어지는 건 옆에서 재우는 나니까, 그냥 틀었다. 그런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제습으로 틀었다.
그래도 '제습'과 '냉방'을 선택해서 에어컨을 틀 때의 나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제습'과 '냉방' 사이에서 나는 '제습'을 선택한다.
여름은 어차피 덥다. 원래 더운 게 여름이다. 다만 그냥 더운 것도 아니고 습하게 더우면 가정 내에 불화가 생기니까 트는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하루종일 틀지 않을 거다. 잠깐 트는 거다. (잠깐이라고 표현한다고 30분, 1시간을 말하는 건 아니다... 3시간 정도?)
그런 나의 마음이 '제습' 버튼을 누르는 내 손가락에 담겨있는 거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될까.
아니, 환경 어쩌구 생각하는 사람이 에어컨을 3시간이나 틀어~?
내가 뭐 산속에서 명상만 하며 사는 사람도 아니고, 할 건 하고 살자.
여러 번 얘기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이 나은 거다.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 지구가 살아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에어컨 계속 틀 거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지. 시원한 공공장소, 예를 들면 집 근처 어린이 도서관을 가거나 시청에서 운영하는 물놀이장을 갈 수도 있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볼 수도 있겠지. 비가 좀 그치면 좀 더 멀리까지 자전거를 끌고 여기저기 다녀보려고 한다. 적어도 지구가 내가 흘린 땀만큼 더 시원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