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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ug 20. 2023

라흐마니노프와 킹더랜드

뻔한, 클리셰가 좋아요

 도무지 늘지 않는 글솜씨에, 또 필사가 대체 글쓰기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가 궁금하기도 하여 필사 문장력 특강이라는 강의를 신청했다. 무려 22만 원의 거금을 들인 강의. 그리고 이 강의를 위해 지금 나는 벼락치기 필사를 하는 중이다. 

 요즘은 칼럼을 읽고 필사를 하는데 오늘의 칼럼은 <왜 지금 라흐마니노프인가>였다. 이 칼럼에서는 최근 임윤찬의 연주로 주목을 받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별칭을 가졌음에도 왜, 음악학자들에게는 큰 관심을 얻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글쓴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반면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움보다 전통에 주력했다. (중략) 청중들은 익숙한 아름다움에 도취하며,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원한다. 전문가들이 클리셰라고 하는 음악에도 크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 글은 나를 <킹더랜드>로 향하게 했다. 


 < 킹더랜드 : JTBC 2023.06.17.~2023.08.06. 16부작 >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다. 내 이름은 김삼순 (2005), 커피프린트 1호점 (2007), 너의 목소리가 들려 (2013) 이후로 간만에 본방으로 챙겨 본 드라마 <킹더랜드>.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모두 6월~8월 사이에 나온 드라마였다는 것. 역시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게 맞나 보다. 

 아무튼, 저 드라마의 공통점은 로맨스 드라마라는 것이다. 저 외에 본 드라마도 꽤 있다. 멜로가 체질, 모범택시, D.P , 오징어 게임, 우리들의 블루스, 일타 스캔들, 응답하라 1994,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산후조리원, 그해 우리는... 이 정도면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말을 쓰지 않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정주행'을 못한다. 처음 본 드라마가 재밌었더라도 며칠 뒤에 다시 보다 보면 그 흥미가 식어버리기도 하고 굳이 계속 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편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한 번에 몇 부작씩 보는 것을 잘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딴짓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방으로 챙겨 본 저 드라마들 (김삼순~킹더랜드)은 얼마나 좋아했던 걸까. 왜 좋아했던 걸까.

 

 <킹더랜드>가 시작된 이후, 지인들과 드라마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구원(이준호)을, 천사랑(임윤아)을, 그 외에 수많은 배역을 이야기했다. 얼마나 재밌는지, 설레는지! 멋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내게 사람들은 말했다. 

"아니, 근데 그거 너무 유치하다던데? 너무 뻔하잖아?"

사실 보면서도 느꼈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클리셰에 평이 갈릴 수 있겠구나 라는 건. 

 예전에 나온 영화 중에 <Ever after (1998)>라는 영화가 있다. 드류 베리모어 주연의 말 그대로, 신데렐라 이야기다. 신데렐라 동화 내용을 착실하게 옮겨온 영화인데, 이쯤 되면 내가 <신데렐라>를 좋아하나 싶겠지만 사실 난 <신데렐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얀 피부에 빗자루를 들고 맥없이 집 안을 청소하는 모습이 퍽 매력이 없어 그림책도, 애니메이션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데렐라'를 이루는 클리셰를 좋아한다. 척박한 현실에서 궂은 일을 끝까지 해내며, 찾아온 사랑에 행복을 찾는 이야기. 

"그 이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Happily Ever After)" 

사실 그 이후로 정말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내 알바가 아니고... 현실성 어쩌고도 내 관심사가 아니다. 지금 내 현실로도 충분히 벅차고, 난 가끔 판타지에서 살아가고픈 사람이니까. 


 나를 꿈꾸게 했던 <킹더랜드>가 끝났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열심히 현실을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익숙한 아름다움을, 나를 판타지로 이끌어 줄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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