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 Jan 19. 2023

꿀꿀, 돼지, 꼬기!

위 제목에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꼭 봐야 할 글.

 지구의 미래 혹은 내 꿈에 대한 걱정을 하기 이전에 몇 가지 일화가 있었다. 어찌 보면 자연으로부터 받은 계시 같기도 했다.


 21개월로 접어든 아이는 엄마, 아빠가 말하는 단어를 제법 따라 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연관된 단어를 이어 말하기도 해 연결해 소통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부쩍 받았다.

'소통'이 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고집이나 떼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내가 아이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도, 소리를 지르는 순간도 확연이 줄어들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는 잔잔한 웃음기가 맴돌고 있었다.

 부쩍 자란 아이와 외식을 도전해볼까 싶어 25일, 남편의 월급날 즈음 동네에서 유명한 고깃집을 찾아갔다. 월급날 고기는 진리라며 선택한 메뉴. 나는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우리, 아빠랑 맛있는 고기 먹으러 가자~"라는 3번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법 비싼 돼지고기 집에서 직원분이 정성스레 구워준 돼지고기를 먹은 아이는 "꼬기!!!!"를 꽤 큰 목소리로 외치며 빠른 포크질로 만족스러움을 표현하였다. 약 1인분 정도, 정말 제 몫을 다 해 먹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역시 돼지고기지!"라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이의 손에 쥔 미니북  [농장동물] 책을 보고 "어? 꿀꿀, 꿀꿀 돼지가 있어요. 아기 돼지 인가?"라고 지나가듯이 말했는데 아이는 잠시 자신의 손에 있는 [농장동물] 책 표지의 돼지를 바라보다가 나를 보며 웃고는 곧 "꼬기!"라고 말했다. 순간 아이의 행동과 언어가 매치가 잘 되지 않아 "응?"이라며 반사적으로 나온 물음과 함께 멍청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는데, 내 아이는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돼지를 가리키며 잘 되지 않는 발음으로 "꾸꾸, 꼬기!"라고 웃으며 다시 말을 했다.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튀어나왔고, 그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꼬기'를 연신 외치며 손에 쥔 책을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애써 재밌는 에피소드로 넘겼고 설거지를 하며 소소한 오늘의 하루를 퇴근한 남편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이에게 보인 웃음을 후회한다.

그 이후로 아이는 돼지, 꿀꿀이라는 단어에 꼬기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붙이고 나를 바라보곤 했다.

여러 책을 읽으며 '동물'과 '고기'를 이어 말하는 것의 부당함을 인식하게 된 나는 더 이상 아이의 말에 웃음으로 반응을 보일 수 없었고 일단 자연스럽게 이러한 연상 반응이 소거되길 바랐다.


 내 아이는 멍멍이를 좋아한다. 야옹이와 어흥이도 멍멍이 못지않게 좋아한다. 길에서 만난 다른 동물들도 "안아~ 안아됴"라고 말하며 양팔을 내민다.

 돼지는 고기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강아지,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걸 언제쯤 알려줘야 할까?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만약 그래도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는 너의 의견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앞으로 아이와 함께 지내며 나는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내가 세운 기준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비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 낫다 말한 이도 있으니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의견만 내세우는 못난 짓은 하지 말자 오늘도 스스로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