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라는 세계가 넓어진 순간

엄마와 동생을 만나다

by 초록

아이가 4살일 때는 갓 복직했을 때라, 손에 일이 익지 않았다. 심지어 그해 여름에는 1정 유치원 정교사 자격 연수가 있었기에 어디 길게 놀러 갈 짬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사람들이 붐비지 않으며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단양으로 3박 4일을 다녀왔었다. 이때를 시작으로 매년 여름, 아이와 함께 친정 엄마도 여행을 한다.


기억도 제대로 안 나는 어릴 적에는 우리 원가족(친정가족)도 남들 가는 여행은 다녀봤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니 그러하다. 그렇지만 온전히 내가 기억이란 것을 하는 시기(초등학교 중~고학년)부터는 여행이란 걸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엄마는 약 이십오 년을 그렇게 작은 세계(내가 느끼기에)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보기엔 굉장히 짠-한터라 친정엄마를 끌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엄마는 제대로 쉬지 못하며 일하는 와중에도 잠시 짬을 내었고 1박 2일, 2박 3일씩 지난 2년을 함께 여행했다.


이번 속초 여행에서도 장소와 기간이 정해지자 바로 말해주니 친정엄마는 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이제 월차 쓸 수 있어!"


긴 시간 미싱일을 지속해 오며 제대로 쉬지도 못했건만, 이번에 드디어 덜 일하고 돈도 덜 버는 청소 일을 하며 '월차'까지 쓸 수 있다고 웃으며 말하던 친정엄마. 함께 기뻐하고 머물 날짜를 정했다. 이번엔 무려 3박 4일 일정이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여행을 못 했던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바로 멀미 때문이다. 엄마는 평소에도 '귀'쪽에 안 좋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어지럼증과 멀미 증상을 달고 살았다. 각종 교통수단(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등)을 타고 이동할 때면 늘 멀미가 문제였다. 그나마 기차가 덜 한 편이었기에 기차를 타고 강릉역으로 온 다음, 내가 강릉역으로 가서 속초로 오면 된다는 괜찮은 계획을 세웠다.


합류 당일, 아침부터 강릉으로 향했다. 일찌감치 나와 *올림픽 뮤지엄(왜 또 여긴 올림픽 박물관이 아니라 올림픽 뮤지엄일까?)에서 전시를 보고 체험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강릉역 근처 *국밥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기차 도착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나 특별히 더 할 것이 없었기에 강릉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7~8월 일부 목요일동안은 강릉역에서 버스킹이 열렸다. 강릉역 내부 의자가 꽉 차 있어 앉을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는데 다행히(?) 아이가 적극적으로 앞쪽에서 구경하고 싶어 해 무대 주변에 서서 노래를 감상했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들로 귀와 마음이 말랑해질 때쯤, 동생이 이제 곧 내릴 거 같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오는 곳] 앞에 앉아 할머니랑 이모는 어디쯤 왔을지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들이 우르르르 몰려온다. 우르르, 우르르르르르, 우르르르, 우르, 우, 르...... 내릴 사람들은 다 내린 것 같은데, 왜 안 보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타는 곳]으로 아이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 엄마와 동생이 보인다. 그런데 뭔가 쎄-하다.


"언니, 엄마 멀미 완전 심하게 했어."


엄마는 2시간 정도의 기차를 타며 심한 멀미를 했다. 나오면서도 계속 토를 했다고 한다. 1년 만의 여행에, 심지어 3박 4일간의 여행에 설레어 멀미약을 깜빡했다고 말했다. 결국 강릉역에서 한 시간 좀 넘게 의자에 기대어 멀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멀미약을 포함한 약 3종류를 먹고 오후 4시가 되어가니 기운이 생기는지 엄마는 결연한 표정으로 차를 타겠다고 했다.(속초로 가기 위해)


최대한 승차감이 안 느껴질 정도로 모시기 위해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아이랑 동생이랑 엄마랑 차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다.


"옴뫄, 나 왜 멀미 기운 없어졌지? 복덩이랑 얘기하는 게 약이었나 봐"


라고 정말 할머니스러운 말을 던진 엄마는 급 경로를 이탈하여 속초 관광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기대하던 여행 첫날이 이렇게 멀미로 가는 거 같아 아쉬워질 찰나였기에 나 또한 한결 마음을 놓으며 악몽 같은 시장 주차장에 단번에 성공한다.(?)


더운 여름날, 시장 초입에서 막걸리빵을 사 먹어 보겠다며 줄 서고, 오징어순대 먹어 보겠다며 줄 서고, 시원한 슬러시 한 잔에 모두가 행복해지고 정말 별 것 아닌 일이 늘어난 인원만큼 배가 되어 즐거웠다.


좁디좁은 14평(베란다 2개 포함) 집(속초)으로 향하며 내가 말했다.



"우리 옛날에 살던 집 기억나? 기찻길 역 근처 다세대 주택."


"어, 거기 기억나지~ 진짜 힘들 때였는데."


"그 집 같아. 엄청 좁아, 그런 데서 우린 어떻게 산 거야 엄마?"


"그러게, 잘 버텼지 뭐. 이제는 추억이지 뭐. 추억 생각나고 좋겠네."


속초 놀러 오라고 초대한 집이 퍽 좁았기에 생긴 미안한 마음을 살포시, 공통된 추억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속초집에 들어섰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분명 넷이 사용하기엔 좁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간이 더 넓어진 거 같았다. 속초라는 세계가 게임의 한 장면처럼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 둘만 있던 속초가 엄마와 동생을 만나 훨씬 넓어졌다. 조용하던 집(속초)이 북적북적해졌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냉장고를 열며 뭐 해 먹었나 확인하는 엄마로부터, 아이 손을 잡고 뭐 놀 거 없나 찾아보는 동생으로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사랑'을 한아름 건네받았다.


내일 일정을 브리핑하며 어느새 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었다. 아무도 잘 생각하지 않고 여행 첫날을 만끽했다. 이 넓어진 속초가, 더 마음에 든다.



*올림픽뮤지엄: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대회의 개최도시인 강릉에서 올림픽 유산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관이다. 다양한 빙상종목(하키, 컬링, 스케이트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아이가 좋아했다. 강릉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고, 주차장도 넓어 가볍게 들리기 좋은 곳이다.


*국밥카페: 강릉역 근처에서 정말 가볍게 밥을 먹고 가려고 들른 곳이었는데, 기대 없이 들른 곳이라 그랬는지 더 좋게 느껴졌던 곳. 요즘 물냉면 가격이 정말 비싼 편인데 여기는 9,500원이라 정말 싸게 느껴졌다. 아이는 물냉면, 나는 초등순두부 얼큰해장국밥을 먹었는데 몹시 좋았음!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나온 몇 안 되는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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