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가 등장했다.

나에게 옷이란?

by Diver

따뜻했던 4월 금요일 저녁, 성수동에 갔다. 성수동은 보리를 임신하고 수제버거를 먹었던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4년 만에 보리 손을 잡고 성수동을 걸었다. 성수동은 골목 골목 작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가게들을 구경하며 산책하기 좋았고, 불어오는 저녁 봄바람도 좋았다.


길을 걷다 옷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단색의 옷들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시즌1 옷장을 준비하며 기본템으로 알게 된, 내가 사고 싶었던 검은색 반팔 롱 원피스가 생각났다. 원피스만 잠깐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옷가게에 들어가 옷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정말 검은색 반팔 원피스만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옷 가게에 들어가면 그 가게의 모든 옷들을 한 번 쭉 훑어 살피는 것이 국룰인데, 다른 옷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게에 검은색 원피스는 몇 벌 없었고,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막 의자를 찾아 보리와 앉으려던 남편은 벌써?!라는 표정으로 함께 나왔다. 아, 뭔가 새로웠다.


다시 길을 걷다 길에 내놓은 회색 반팔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은 한 벌에 만 원, 두 벌에 만 팔천 원이었다. 우선 티셔츠 가격이 착했고, 가슴의 초록색 레터링도 마음에 들고 질도 괜찮았다. 무난한 디자인이라 휘뚜루마뚜루 입기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난 회색 반팔 티셔츠가 없었다. ‘이건 꼭 사야 해!’ 마음 속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왠지 선뜻 사지지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무난하고 가격이 착하다며 당장 두 벌은 샀을 티셔츠를 두고 계속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사주겠다고 했다. 사준다는 말에 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더 이상 옷을 보지 않았다. 내가 안 살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난 예전과 달랐다.


뭐가 달라졌을까? 예전 같으면 분명 사고도 남을 옷이었는데 왜 안 샀을까? 이리 저리 생각해보다 내게 옷이란 ‘가격’과 ‘디자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아주 예쁜 옷 - 예쁜 옷 - 보통 옷 - 이상한 옷’과 ‘너무 비싼 옷 - 비싼 옷 – 보통(적당한) 옷 – 저렴한 옷’이 있었다. 난 가격이 저렴하면 옷이 적당히 괜찮기만 해도, 아니 이상하지만 않으면 사서 쟁겨뒀다. 그게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후달리면 예쁜 옷을 가져야겠다는 욕망이 커졌고, 그럴 땐 옷이 비싸도 질렀다.


‘가격’과 ‘디자인’ 두 축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옷은 모두 내가 살 가능성을 기본 전제로 했다. 물론 너무 비싼 옷, 이상한 옷, 특히 비싸며 이상한 옷을 제외하고 말이다. 난 이 수많은 가능성의 옷 중 현실적인 이유로 아주 극소수만 살 수 있었다. 모래알만큼 많은 옷 중 무엇을 사야할지, 어떤 옷을 골라야 내가 가진 자원 대비 효율적일지, 또 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난 늘 고민했다. 어느 날은 욕망에 휘둘리며, 어느 날은 가성비를 따지며 그동안 많은 옷을 샀다.


하지만 옷장을 열면 늘 입을 옷이 없었다. 빽빽하게 걸려 있는 옷들을 이리 저리 뒤져도 이상하게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럴 때면 예쁘지만 비싼 옷을 사지 못해서, 그리고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 쉽게 우울해졌다. 옷장에 걸려 있는 나름 비싸게 주고 샀지만 잘 입지 않는 옷들을 보며 내 선택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졌다. 어서 이 무겁고 답답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멋진 새 옷을 사 입으면 다시 나도 멋지고 괜찮아질 것 같았다. 이것이 옷에 대한 기본적인 감정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있던 것 마냥 너무 익숙하고 오래 돼, 이렇게 무겁고 부정적인지 몰랐다.


내가 성수동에서 가격과 디자인이 착한 회색 반팔 티셔츠를 사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 옷이 33개 아이템에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3개라는 제한된 숫자로 인해 나에겐 디자인과 가격 외에 ‘필요’라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예전에 옷을 살 때는 가격이 가장 중요했다. ‘가격이 적당한데 예쁘네’(구입), ‘가격이 저렴한데 괜찮네’(구입), ‘가격이 비싼데 그냥 그렇네’(구입하지 않음). ‘가격이 비싼데 예쁘네’(고민, 상황에 따라 구입하거나 구입하지 않음)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필요’가 가장 중요하다. 내 옷장은 33개의 아이템만 들어가기 때문에 이 33개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신발과 가방, 악세서리까지 합치면 옷의 개수는 더 작다) 입을 수 없다. 다음 시즌의 옷장은 또 어떻게 꾸려질지 모르기 때문에 예전처럼 사두면 언젠가 입겠지 할 수도 없다. 이제는 내게 필요한 옷인지 아닌지, 33개 안에 들어갈 옷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필요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가격이 힘을 잃었다. 이젠 내게 필요한 옷이면 가격이 제법 비싸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33개 밖에 없으니,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선택하고 입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난 환경과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기업의 옷도 입고 싶었는데, 그런 옷의 가격은 결코 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마 내 돈으로 사지는 못하며 마음 속으로 응원만 했는데, 이제는 그 가치에 내가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거창하게 환경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구의 유한함과 우리 욕망의 무한함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옷장은 나만을 위한 옷장이다. 내 시간과 공간과 돈, 나의 선택과 감정을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내가 선택할 것이 많지 않고, 선택지가 모두 내가 즐겨 입는 옷들이라 선택이 어렵지도 않다. 짧은 시간에 늘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옷을 자주 입어 가끔 지루한 감정이 들지만, 예전처럼 옷장 문을 열었을 때 부족함, 후회, 죄책감, 우울함과 같은 무겁고 칙칙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옷장도 가볍고 나도 가볍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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