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처럼 가벼운 프로젝트 333 옷장 완성

프로젝트 333 시즌1(3월~5월) 옷장 만들기_2탄

by Diver

지난 번 일을 거울 삼아 이번엔 <프로젝트333> 책을 다 읽고, 가능한 책대로 해보기로 했다. 책을 다 읽자마자 두 번째 조퇴를 했다. 다시 옷장을 열고 옷을 모두 꺼내 거실 바닥에 쌓았다. 이번엔 옷장 위 다른 상자에 보관했던 계절 지난 옷들도 모조리 꺼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마스크를 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더는 춥지 않았다.


옷 가운데 앉아 먼저 옷을 세 더미로 구분했다. 책에서는 이 더미를 러브(love), 토스(toss), 메이비(maybe)라고 불렀다. 러브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겨 입는 옷을 쌓은 더미이다. 토스는 러브와 반대로 손이 잘 안 가고 한 동안 입지 않았으며, 옷을 보면 뭔가 불편한 감정이 드는 옷 더미다. 메이비는 러브와 토스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인 옷이다. 책을 읽을 때는 단순하게 세 더미로 옷을 구분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웠다. (그래서 책에서는 신나는 노래도 틀라고 하고, 쥬스에 산책에, 낮잠도 자라고 했나보다.)


분명한 러브는 구분하기 쉬웠다. 내가 작년에도 잘 입었고 올해도 잘 입을, 내게 잘 맞고 내가 좋아하는 옷이다. 분명한 토스도 쉬웠다. 오랫동안 옷장에 걸려있었지만 입지 않은 옷, 지금도 앞으로도 안 입을 것이 나름 분명한 옷, 너무 낡은 옷, 수선해야 하는 옷(하지만 수선하지 않을 옷), 사이즈가 안 맞는 옷(작아진 옷), 왜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나 생각드는 옷이다.


난 한 번도 입지 원피스 하나를 토스로 추려냈다. 어깨에 왕리본을 묶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무늬의 민소매 롱원피스. 몇 년 전 춥던 겨울날, 더운 나라 바다에 가 바다를 보며 누워있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던 어느 날,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이 원피스를 발견하고 바로 샀다. 내 머릿속에 철썩거리는 바다에서 입을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지금은 못 입지만, 다음 바다에 갔을 때 입어야지 생각했다. 며칠 후 배송받은 원피스는 택도 떼지 않은채 옷장에 보관했다. 하지만 그 옷은 보기만 시원했지, 너무 두껍고 무겁고 길기까지 해 도저히 여름에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이 옷은 한 번도 안 입은 새 옷이지만(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스로 보내기 전 한 번 더 입어보았지만), 어렵지 않게 토스로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분명한 러브와 토스는 쉬웠지만, 그 중간은 이름 그대로 메이비, 여러 모로 참 애매했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몇 번 안 입은 옷(특별한 날 입는 옷을 아끼다 똥 된 경우다), 예전엔 꽤 자주 입었고 나름 예뻤던 옷(예뻤던 과거의 나를 버리는 것은 어렵다), 지금은 잘 안 입지만 두면 언젠가 입을 것 같은 옷(책에서는 나중에도 안 입는다고 했다), 너무 멀쩡한 옷(죄책감이 들 정도로 너무 멀쩡한 옷,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다) 등 잘 모르겠다 싶은 옷들을 메이비 더미로 쌓았다. 러브와 토스 더미는 산책하기 좋은 동네 공원 정도라면, 메이비는 설악산 정도로 쌓였다.


옷을 구분하며 하나 하나 살피다 보니 여러 생각과 마음이 생겨 어지러웠다. 옷 더미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추린 러브 옷들을 들고 비어있는 옷장에 걸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 옷장은 빽빽하게 옷들이 가득차 있어 무슨 옷이 있는지 조차 알기 어려웠는데, 이젠 몇 벌 걸리지 않은 옷장이 마치 고급 옷가게의 옷장 같았다. 걸려 있는 옷들도 자주 입어 익숙한 내 옷들인데, 뭔가 새롭고 낯설었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에 옷장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보았다. 확실히 달랐다. 전과 달리 무척 가벼운 마음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러브 옷들로 채운 옷장은 옷이 많이 없어 옷장 자체가 가볍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입는 옷들만 있는 옷장을 보는 건 확실히 달랐다. 몇 번을 더 옷장 문을 열고 닫았다.


그제야 지금까지 내가 옷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게 되었다. 늘 그랬기 때문에, 아주 오랬동안 그랬기 때문에 무거운지 몰랐다. 비싸게 주고 샀지만 입지 않는 옷을 보며 드는 죄책감과 후회, 몇 년 전 예쁘게 입었지만 이제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을 보며 드는 아련함과 미련, 늙어감에 대한 자각, 옷장에 옷은 많은데 늘 입을 옷이 없다는 부족함과 혼란스러움, 이것이 옷에 대한 내 기본 감정이었다. 과거에 잘 입었고 예뻤던 옷에 대한 감정은 추억이고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 옷들이 없고 보니 그 감정 역시 무거웠다. 토스와 메이비의 옷들이 옷장에 없으니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옷들은 내 ‘현재’, 그것도 ‘괜찮은 현재’, ‘내가 좋아하는 현재’였다. 그 외의 것들은 그게 과거든 미래든, 추억이든 후회든 모두 무거웠다.


다시 거실로 나가 쌓여있는 메이비 옷들을 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버려야하는지 두어야하는지 참 모호했는데, 이제는 옷에 대한 감정이 느껴졌다. 방금 옷장을 열었을 때 들었던 가볍고 좋은 기분과 느낌이 아니면, 아무리 옷이 멀쩡하고 비싸게 주고 샀어도 그 느낌과 거리가 멀면 토스였다. 메이비 더미에 앉아 다시 옷을 분류했다. 일정 무게 이상의 감정이 드는 옷은 모두 토스로 넣었다. 하지만 너무 비싸게 주고 산 너무 멀쩡한 옷 한 두 벌은 손이 떨려 메이비로 보냈고, 또 한 두 벌은 러브라며 옷장에 걸었다. 손이 떨리고 마음이 부담스러운데 억지로 토스나 메이비로 보낼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이 정도지만 프로젝트333을 하며 내게 뭔가 더 채워지고 뭔가 더 비워지면, 그 때의 나는 다른 선택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패자부활전을 통과해 러브로 올라온 옷들을 옷장에 걸었다. 러브 옷들 중 3월부터 입은 옷들과 5월까지 입을 옷들을 골라 '333 옷장(시즌1)'에 옮겨 걸었다. 작아진 메이지 옷 더미는 작은 종이 상자에 넣고 파란색 테이프로 단단히 밀봉했다. 그리고 겉에다가 ‘12월까지 생각나지 않으면 버릴 것’ 이라고 크게 적었다. 책에는 3개월 후라고 했지만, 내게 3개월은 너무 짧았다. 상자 안에는 겨울 옷도 있으니까라며 나름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큰 코스트코 장바구니 가득 토스 더미의 옷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제야 뭔가 정리되고 만든 것 같았다. 아이 하원 시간이 다 되어 나머지를 서둘러 정리했다. 드디어 옷장을 완성했다. 프로젝트333 시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야매로 만든 프로젝트 333 옷장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