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과거 한국 사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며 자기가 좋아해서 선택하는 일이 아니면 인생을 잘못 산 거마냥 취급하고, 돈 안 된되는 일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꼰대들의 조언'이라 치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성공한 소수의 이례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철 없는 행동을 낭만으로 포장해 수없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철이 없다는 게 돈이 안 되는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확히는 아름답게 포장된 낭만적 환상에 빠져 삶을 어린아이처럼 감정 중심으로 이해하고, 책임·관계·지속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태도 때문이다. 지금부터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낭만적 환상이 어떻게 청년들의 감성을 그렇게나 자극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환상인지 설명해보겠다.
2.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낭만이 청년들의 감성을 자극한 이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한다”는 말이 아름답고 낭만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 문장이 현실의 고통과 조건을 통째로 삭제한 채,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영웅서사라는 환상을 통해 현실에서 충족하기 힘든 판타지를 즐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성공한 천재
모두가 반대해도 끝까지 밀어붙여서 이룬 사람
이러한 영웅서사는 어떻게 낭만이 되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책임지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로 인해 내 욕망이 억압되면 가끔 자기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현실을 굴복시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러한 환상을 충족시켜주는게 영웅서사고 그래서 자신이 못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장 나의 욕망과 의지대로 사는 나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낭만은 타인이 갖고 있고, 나는 가지지 못할 때 더욱 더 부푸는 것이다.
3. 낭만적 환상을 쫓는 것이 철이 없는 이유
그러나 그 낭만적 환상에는 고난과 책임이 없다. “좋아하는 일에 도전한다”는 말에는 월세, 통장 잔고, 실패의 후폭풍 같은 것들이 전부 빠져있다. 애초에 영웅서사라는 것이 결과가 좋은 사람들만 필터링한 성공 스토리고 실패한 수백만 명은 물론 서사가 되지 않으니까 기록되지 않는다. 즉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오로지 내가 그것을 이룰 빛나는 가능성만 있고 실패도 없고 비참함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낭만적 환상이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우리의 삶의 충만함이라는 것 자체가 경제적 기반으로 지속성과 인간관계 그리고 그를 통한 나에 자존감을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즐겁냐/싫으냐를 기준으로 행동하지만, 성인은 살 수 있느냐/지속될 수 있느냐/타인과 함께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재미라는 감정은 인생의 충만함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무언가에 대한 재미라는 감정을 느껴도 그것을 프로처럼 전문적으로 파면 재미를 잃는 것은 다반사고, 만약 성과마저 내지 못하면 그로 인해 받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재미를 더더욱 감소시킨다. 그러나 우리 삶이라는건 일해서 버는 것 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과 여유시간을 가지며 사람과 더불어 살고 하는 과정이 포함된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생계를 위해 투잡까지 뛰어야하고 이는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소모시킴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돈이 없으면 사람과 더불어 살기도 힘들고 고된 노동에 내면도 피폐해지고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열등감 때문에 자존감도 낮아진다.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한 여가시간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서 살면서 누리는 감정교류와 사회에서 1인분을 한다는 자존감이다.
"호기심 기반의 행복은 빠르게 소모되고, 만족 기반의 행복은 천천히 축적된다."
하지만 만약 돈 잘 벌고 잘 하는 일을 한다면 꾸준한 성과와 성장에 대한 기쁨으로 인해 자존감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무언가에 전문가가 되면 하는 일에 재미도 붙는다. 돈이 쌓여가면서 생기는 삶의 장기적인 플랜도 삶에 만족감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재미없는 일을 한다고해서 망한 인생이 절대 아니며, '일을 선택할 때 꼭 즐거운 일을 해야 성공적인 삶'이라는 힐링 멘토들에 말은 가스라이팅이다. 오히려 이것이 안 된다면 스트레스, 피로, 중압감 등으로 인해 삶은 오히려 피폐해지며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 '재미'를 가지고 자기합리화하다가 무너지는 것이다.
힐링 멘토들의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들은 보통 큰 도전을 앞둔 10~20대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경제적 실패의 리스크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지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 막연히 믿고, 경제적 실패의 결과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고, 실패의 리스크가 다 주변에게 전가된다는 현실을 이해 못 하거나 이해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적인 삶의 원리를 무시하고 겉으로만 아름답게 포장된 낭만적 환상에 취해 인생을 희생하는 것은 어른의 태도가 아니다.
4. 결론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낭만적 환상에 빠진 사람을 철이 없다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다. 낭만적 환상에 취해, 자기가 이 길을 가려는 이유가 자아도취심 때문인지 직업정신 때문인지 구별하지도 못할 뿐더러, 고된 삶과 무너짐을 경험하지 않은 채 낭만을 신처럼 떠받드는 태도가 철없다 여겨지는 것이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리고 힐링 멘토들은 그 누구의 인생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어른의 삶에서 중요한 건 꿈을 지탱할 생존 기반을 구축할 능력이란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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