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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의정원 Dec 18. 2024

나의 내면아이

아이가 버거운 엄마, 엄마가 필요한 아이

내면 아이 치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유난히 까다롭고 징징거림이 심했던 첫째 아이의 육아가 힘들다고 느꼈던 시기였다. 나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 육아에 대한 답을 찾고자 육아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아이에게 화가 나고 억울해하던 그 지점에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고 했다. 엄마로부터 시작된 나의 내면 아이는 경제관념과 남편, 시어머니와 관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 치료 공부와 내면아이 치유를 하며 살펴본 대로 나의 원가족, 우리 집은 역기능 가족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삼각관계 속에서 희생양 역할을 하며 끊임없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나와 우리 형제들은 엄마 아빠의 부부 싸움을 자주 보고 자랐다. 일방적으로 엄마는 아빠에게 폭언을 쏟아냈고 아빠는 그런 엄마의 폭언을 가만히 듣다가 쇠 그릇을 내동댕이쳤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비싼 것은 내동댕이 칠 용기도 없는 쪼다라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순했던 아빠는 엄마의 말에 최대한 분노를 참았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아빠가 남자답지 못하며 배포도 없고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무능한 아빠랑 사는 엄마가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자식들 때문에 못 도망간다는 엄마의 말은 엄마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갖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언제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유기 불안을 느꼈다.


아빠와 싸우고 나면 엄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나보고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결혼하면 불행해진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엄마의 인생처럼 막장 드라마에서 보던 극단적인 고부갈등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남자들은 다 아빠처럼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신뢰할 수 없어 다가오는 사람들마다 항상 철벽을 쳤고 제대로 연애할 수도 없었다. 독신으로 살겠다고 맹세했고, 남편과 결혼 전까지 35년을 거의 모태 솔로로 살았다.


나와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싸운 적이 거의 없다. 경제관념이 뚜렷했던 남편과 돈이 생기면 쓰기 바빴던 나는 결혼 초 생활비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남편이 나에게 내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유복했던 환경이었고 단지 결혼이 늦어 시아버지의 걱정 대상이었지만 시어머니의 자부심이었던 남자였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아뿔싸!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를 무시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내 안에 남자를 무시하던 엄마의 말과 행동이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바로 사과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조심하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의 장점을 더 많이 찾기 시작했다.


둘째 임신하며 내면 아이를 마주하며 새벽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죽이며 울었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의 싸움을 보고 자랐다고.. 엄마가 아빠를 항상 무시해서 내 안에도 당신을 무시하는 습성이 있었던 것 같다고.. 남편은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나는 10살 때부터 엄마의 험난한 시집살이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세상의 모든 시어머니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계모보다 더 무서운 악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결혼초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뾰족한 반응을 보이고 나면 남편과 싸움까지 가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어머니의 말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꼬아서 듣는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뒤에는 엄마가 주입한 시어머니에 대한 가스라이팅의 말들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 안에 엄마가 주입했던 본인 시어머니에 대한 상처의 말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시어머니의 말은 내 안에 아무런 상처도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았을 터였다. 내 안에는 엄마의 시집살이가 간접 경험이 되어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내재화되어 있었다.


결혼 7년 차. 몇 년의 시간 동안 시작된 내면 아이 치유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며 이제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더 이상 꼬이게 들리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명절, 제사 때마다 스스로 상을 다 차리시고 며느리들은 그냥 와서 상 차리고 설거지 정도만 하게 하신다. 본인이 싫은 일은 며느리들에게 강요 안 하시는 쿨한 분이시다. 며느리 불편할까 봐 집에 오시지 않으시고 본인 아들들과 함께 여행을 가시거나 힘든 일은 아들을 부르신다. 지나 놓고 보니 결혼초 고부 갈등을 겪으며 오랜 시간 마음속으로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것이 정말 죄송했다. 내면 아이가 치유되니 그토록 예민하게만 느껴졌던 첫째 아이와 남편, 시어머니 등 주변 모든 인간관계에서 평정심이 찾아왔다.


우리는 자신이 듣지 못한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없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행동은 할 수 없다.

어떤 안에 흥분한다는 건 그 흥분의 씨앗이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당신은 어린 시절에 돈에 관한 어떤 말을 듣고 자랐는가, 누구를 보고 자랐는가, 어떤 경험을 했는가?

-아이가 버거운 엄마, 엄마가 필요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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