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부터 시작된 울진 산불은 열흘만에 내린 비로 간신히 진화되었습니다. 이번 산불이 대형화 된 것을 놓고 여러 전문가들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기후변화가 어떻게 작은 불씨를 역대 최악의 산불로 키웠을까요?
3월 4일에 시작된 울진 산불은 약 9일동안 축구장 3만 5,000여 개 크기인 25,003ha 를 불태웠습니다. 경상북도는 지난 16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산불 피해 규모가 1,300억 원에 육박한다고 밝혔지만, 피해조사가 계속 진행중인 만큼 피해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산불로 인한 생태계 피해 규모는 아직 추산되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이번 산불은 전력공급의 대동맥 역할을 하는 765·345kV 초고압송전선로와 일부 대형발전단지 운영에 차질을 빚어, 도심 LNG·열병합 발전과 서해안 일대 석탄화력 발전소가 그 공백을 메우기도 했습니다. 대형 산불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추산하기도 어려운 현 상황에 더해, 산불이 한때 울진에 있는 한울원전의 울타리까지 번지고 LNG 저장시설을 위협하며 돌이킬 수 없는 큰 재앙으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현재 산림청과 경찰은 울진 대형산불의 최초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화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적어져 숲이 바짝 마른 상태가 되어, 초기에 진화될 수도 있었던 불이 큰 산불로 이어진 것은 명확합니다. 평년 대비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후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현상은 캘리포니아, 호주, 터키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산불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으로 주로 온도, 토양 수분, 습도와 바람이 꼽힙니다. 3월 4일 당시 울진의 온도는 최저 영하 1도, 최고 영상 17도로 평년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큰 산불로 번진 배경에는 극단적인 겨울 가뭄이 있습니다. 기상청이 지난 7일 발표한 2021년 겨울철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번 겨울철의 전국 강수량은 13.3 mm로 평년 대비 14.7%에 불과합니다. 이는 1973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적은 강수량입니다.
우리나라는 2022년 심각하게 건조한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그린피스 리서치 유닛이 Windy.com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현재 한국의 가뭄 지수는 D4(예외적인 가뭄) 과 D5(극심 가뭄) 상태로, 해당 산불 지역의 토양 습도는 약 35%로 확인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식물종은 토양 습도가 0%일 경우 생존할 수 없고, 30% 미만의 습도에선 물 부족 (water stress)의 가시적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50% 미만에선 대부분 식물종의 토양 수분 활용이 제한되기 시작됩니다. 그 결과, 푸르게 우거진 숲이 불쏘시개로 불릴 만큼 건조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기후 변화로 산불에 취약해진 곳은 울진만이 아닙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1~2월 산불 발생 건수 228건으로, 최근 10년간 같은 기간 평균 발생 건수(92건)의 2.5배에 달합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평균 기온이 올라 적설량과 강우량이 적어진 것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지난 200여 년간 1.09℃ 올랐으며, 50℃ 이상 치솟는 폭염 일수도 1980년대 이후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1980~2009년 사이 연평균 폭염 일수 14일, 2010~2019년 사이 연평균 폭염 일수 26일) 그에 따라 지구 곳곳에서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럽산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부유럽에 집중된 산불이 발생해 평년 수준의 8배에 해당하는 128,000ha가 불탔으며, 캐나다와 미국 서부에서도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점점 더 대형화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형 산불은 기후변화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광합성 작용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던 산림이 불타 없어지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한꺼번에 다시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 대기감시 서비스’(CAMS)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 해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총 64.5억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으며 이는 2020년 유럽 연합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약 26억 톤)보다 약 148% 더 많습니다.
최근 발간된 IPCC 워킹그룹 II 6차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미 산불위험이 증가했으며 지구평균 온도가 2℃까지 상승하게 되면 산불 피해 면적이 최대 35%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또한 2월 23일에 유엔 환경계획(UNEP)이 공개한 산불 보고서 (Spreading like Wildfire: The Rising Threat of Extraordinary Landscape Fires)에 따르면, 기후 변화와 토지 사용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대형 산불로 피해를 보는 면적이 최대 14%, 2050년까지 30%, 21세기 말까지 50% 증가하는 등 산불이 더 빈번하고 대형화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국토 면적에 해당하는 약 1,000만 헥타르(ha)를 2019년 산불로 잃은 사람들이 작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가 열린 영국 글라스고로 향했습니다. 호주 산불 생존자를 대표해, 조 도즈 산불 생존자 기후 대책 회장은 “산불의 근본원인은 화석 연료의 사용에 있다” 며 세계 각 국가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산불로 집을 잃은 이들의 말처럼, 기후변화로 커진 산불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그 근본원인인 기후변화가 더 심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UN IPCC)는 초대형 산불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통제불능 상태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준을 한국에 적용하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50% 이상 감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만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40%의 목표를 자세히 보면, 기준년인 2018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내와 해외의 배출량을 모두 포함한 량으로, 목포연도인 2030년은 국내 순 배출량으로만 적용했습니다. 기준연도와 목표연도 모두 순 배출량으로 계산하면, 사실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30%만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산불로 기후 비상사태가 우리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염원과 기도만으로는 갈수록 심각해 지는 대형 산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정부가 보다 더 빠르고 과감하게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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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영 그린피스 커뮤니케이션 오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