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린피스 활동가 다섯 명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반대하기 위한 평화적인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활동가들은 4월 26일 법정에 섰고 5월 13일, 두 번째 공판이 진행됩니다. ‘평범한 아저씨’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김래영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물보라가 튀고 있다. 얼굴에 날아드는 바닷바람은 날카롭다. 새벽녘 어둠 속에, 고무보트는 해수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이윽고 눈앞에 창백한 둥근 물체가 들어온다. 고리원자력발전소다.
손이 떨리고 있다. 온몸이 떨리고 있다. 이 떨림은 심상치 않다. 행여 머리에 장착한 카메라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앞서 나간 보트가 도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파도를 막는 돌 무더기를 지나 고리원전의 철조망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놀랍게도 땅에 발을 딛자 떨림은 사라졌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인자 원전 고마 지라, 쫌!
지난 10월, 나를 비롯해 5명의 활동가들은 해상을 통해 고리 원전 앞으로 접근했다. 원전을 둘러싼 철조망 펜스 앞에서, “인자 원전 고마 지라, 쫌!”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쳐 보이는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이 될 고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고, 이곳에 신고리 5,6호기가 추가로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나이는 어느새 삼십이 넘었고, 몸도 둥글둥글 해졌다. 성격은 얌전한 아니, 소심한 편이다. 출근길 거리에서 스쳐가는 평범한 아저씨(어느새 아저씨다).
이런 내가 용기를 내어 고리 원전 앞까지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다.
누구나 원전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 이후 더욱 분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부산과 울산에 걸쳐서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원전 30km 반경 내에, 3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가, 나의 친구가, 내가 아끼는 소중한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2개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우리 다음 세대의 미래를 담보로 한 '도박'이다. 원전을 계속 늘리는 것은 ‘중독’처럼 보인다. 따라서, 내가 바라본 대한민국은 '원전 도박 중독자'이고, 나는 이를 막기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위험을 알리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작은 목소리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변화를 위해 함께 해줄까? 광화문에서 홀로 피켓을 들고 있을까? 아니면 국회의사당에 시끄러운 시위를 벌여야 할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바로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리 원전 앞으로 향했다. 나와 같은 뜻을 가진 평범한 네 사람들과 함께.
40분간의 평화적인 시위를 끝내고 자진해서 철수했다. 아무런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됐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늙은 어머님께서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걱정이 크시다.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도 나를 많이 걱정한다.
큰 변화는 아직 없다. 고리는 그 사이 결국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 단지가 되어 버렸고, 위험성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신고리 3호기는 지난해 말 운영을 시작했고, 4호기도 곧 시험 운행에 들어갈 전망이다.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건설 계획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원전 반대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원전 반대에 대한 목소리를 내주었고, 첫 공판 때, 법원으로 찾아와 응원도 해주셨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많은 독자들이 댓글을 달아 주었고, 격려의 메시지도 남겨주셨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도 신규 원전 건설 반대를 약속한 후보들이 부산과 울산에서 많이 당선됐다.
지금,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변화에 조금은 기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제 13회 환경영화제에서 현재 상영 중인 “How to Change the World”는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어떻게 초기에 태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 중에 하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행동하고, 이를 통해, 세상이 바뀌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영웅이 아니다. 세상이 변해야 하고, 이를 위해 행동이 필요하다고 믿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외치면,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지금 보다 더 좋은 미래로.
글/ 김래영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