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중함에 대하여
2020년 10월 마지막 날의 일기
석사시절, 사서가 되기 위한 길이 뭐이리 험난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도서관 사서. 이 심플한 직업을 갖고자 한국에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세 번째 학기는 벤쿠버에서 교환학생으로 보냈고 해외 복수학위 과정에 지원하여 미국에 오게 되었다. 울며불며 공부를 했고 운 좋게도 공공도서관 사서로 취직을 했다. 적다보니 길이 험난했던 것이 아니라 욕심 많은 나의 업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에는 본질에 대한 생각을 한다. 보스턴에서 2년을 보낸 후 업스테이트 뉴욕으로 이사왔다. 초반에는 인생의 황금기를 이렇게 시골에서 썩히면 어쩌지 등의 쓸데없는 고민을 반복했다. 유학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감정은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친구들이 써준 편지와 유학생/취준시절 쓴 일기를 보는 것도 효과가 있다. 털뭉치 미르 사진도 꺼내본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들로 시간을 채워나간다.
캄보디아 봉사, 독일/캐나다교환학생, 필리핀인턴십 등으로 오랜만에 조우할때마다 친구들은 각자 성장한 모습으로 반겨주었고 가족또한 변함이 없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에게 그들의 본질은 고향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고 그 시간이 이방인의 삶에 용기를 불어다 준다. 타지에 있어도 나의 본질을 잃지 않게 해 준 사람들의 존재가 정말 소중하다.
자연 가까이에서 지내다 보니 여유로워졌다. 유학시절 때부터 품어왔던 불안, 우울, 슬픔 등 방치해두었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고 닦아주는 용기도 생겼다. 본능적으로 지금 나의 행동들이 여생의 습관으로 바뀔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문명의 발톱이 할퀴지 않은 곳이라, 흐르는 시냇물인데도 물맛이 아주 좋았다.
법륜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