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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Oct 22. 2021

쓰레기 없이 여행하기를 꿈꾸었지만...

처절한 실패의 기록


 코로나로 여행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역마살 유전자가 다분한 나는 해마다 늘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운다. 복직 후 등원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당겨진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린이집 방학이라고 집에만 있기에는 미안하기도 지루하기도 해서 이번에도 3박 4일의 휴가 계획을 세웠다. 특별히 이번 여름휴가를 계획하면서는 어떤 실천을 할까 고민이 많았다. 용기 내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하루 한 끼 채식 실천? 아니면 쓰레기 일기를 적어볼까 생각도 했다. 어떻게 해야 쓰레기를 줄이는 여행이 가능할지 검색도 해보고 준비를 해보았지만, 여행 끝에 남은 건 리스트 중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처절한 실패의 기록뿐이다. 그래도 이 기록을 남기는 것은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여행이 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지구를 지키고 싶다는 굳은 결심을 했지만, 당장 아이들을 건사하는 문제는 늘 새로운 변수가 되어 고민을 안겨준다. 여행지에서의 첫 식사를 하기 위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였다. 분명 아이들 물병에 물을 가득 담아 들어갔는데도 아이들은 식당 정수기 옆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종이컵을 쓰고 싶어 했다. 떼쟁이 아들들을 환경 보호의 논리로 설명해서 설득하기란 당장 불가능했다. 마음먹으면 시도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환경 보호와 관련한 부분에서 남편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시작부터 떼를 유발하여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다. 1패. 여기서 절실히 느낀 건 부부 사이의 합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일회용품을 왜 쓰지 않아야 하는지, 왜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야 하는지 어린아이들이라도 교육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 엄마의 실천 방식이 다르다면 아이들도 혼란을 느낄 것이다. 결국은 아이들도 편리함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

 

 식당을 나온 뒤 대나무 숲을 구경했다. 뜨거운 폭염 한가운데 높다란 대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작부터 “너무 더워요.”, “힘들어요. 안아주세요.”를 반복했다. 그냥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쉬어야 했나 '현타'가 왔지만, 여름은 원래 덥다는 걸 녀석들도 온몸으로 느꼈으면 했다. 나가서 아이스크림 먹자고 겨우 달래서 코스를 마칠 수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가게에서 예상외의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 차인데 마셔보라며 가게 아주머니께서 작은 종이컵에 우리 가족 수만큼 따라서 주시는 거다. 순간 괜찮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영업에 단련된 손놀림은 어찌나 빠른지. 여기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가 되니 입 헹구라며 새 종이컵 2개에 또 대나무 차를 부었다. 너무나 쉽게 소비되는 종이컵들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무더운 날씨는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엄청난 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거절한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했고, 카페에서는 당연하게 일회용 컵에 아이스커피를 담았다. 여기서 텀블러 사용에 대한 합의가 되어있었다면 당당하게 개인 컵을 내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개인 컵을 챙기더라도 들고 다니는 수고로움까지 요구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후에도 우리는 매일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눠 먹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차에서 잠을 쫓아줄 인스턴트커피도 샀다. 또 우리만 마실 수 있나? 아이들을 위한 플라스틱병 음료도 샀다. 2패, 3패... 줄줄이 패배의 연속이었다.


 첫날 묵을 숙소에 들어갔다. 급히 방을 구했는데도 만족스러웠던 제법 최근에 지어진 듯한 깨끗한 펜션 건물이었다. 시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500mL 생수병 3개가 나란히 들어있었다. 여기서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걸 고스란히 남겨놓고 텀블러에 물을 받아먹자고 할 수는 없었다. 환경과 경제의 논리는 늘 이렇게 대립한다. 방값에 포함된 물을 포기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쭉 도전 과제일 것이다.

 



 둘째 날은 전날보다 더 더운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비 내릴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하늘은 쨍하게 파랬고 숨 막히는 폭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아이들 위주의 여행은 싫어서 벽화마을과 레일바이크를 코스에 넣었다. 늘 그랬다. 고생을 사서 하는 스타일. 특히 벽화마을은 좁고 가파른 데다 그늘이 많지 않아 땡볕을 온몸으로 감수해야 했다. 아이들의 짜증이 극에 달했다. 다행히 중간에 작은 카페가 있어 들어가 쉴 수 있었는데, 처음으로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 카페를 만났다. 예쁜 드링킹 자에 음료가 나온 것. “우와, 맛있겠다!”를 외치며 허겁지겁 흡입했다. 하지만 “일회용 컵에 달라고 할 걸.”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드링킹 자에 꽂혀있는 일회용 빨대를 속상해하는 나의 간극은 참 멀고도 멀어 보였다. 어쨌든 일회용 컵 3개는 아꼈으니 만족하며 다시 뙤약볕으로.


메뉴 : 복자주스(복숭아+자두)

 

 여행 중 두 번 포장 배달 음식을 먹었다. 둘째 날 저녁에 올림픽 야구 대표팀을 응원하려고 숙소로 음식을 사서 들어갔고, 셋째 날 점심에 바닷가에서 치킨을 시켜 먹었다. 아이들을 물가에 내놓고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치킨을 받아오기란 애초에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둘째 날 먹은 햄버거 가게에서는 그래도 용기를 준비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차라리 매장에서 먹었더라면 음료를 먹은 컵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과 후회의 연속. 쉽지 않다 정말.




 갯벌에서 맛조개를 잡는 것이 소원이던 꼬꼬마들을 위해 소금까지 챙겨 서해로 갔지만, 물이 빠져도 펄이 나오지 않자 아이들은 실망했다. 이미 셋째 날 여행은 파라솔 대여 시간이 오후 5시에 끝나면서 마무리되었다. 급히 조개가 많이 나온다는 근처 다른 해수욕장을 알아봤지만, 물때를 보니 저녁 6시는 되어야 조개를 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조개 캐면 씻고 정리하고 저녁 먹고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여행 마지막 날에는 늦어도 저녁 시간 전에 출발해야 밤 10시까지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계산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서해까지 왔잖아. (그나마 동해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가려던 누에타운이 코로나로 휴관에 들어갔다는 걸 뒤늦게 알고는 일정을 수정하여 다시 갯벌 체험에 나섰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였는데 엄청난 바람에 파도도 세져서 이날 과연 조개를 캘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1시간 남짓 놀고 나니 모래사장에 펼쳐놓은 돗자리에서 파도가 눈에 띄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인생 40년이 다 되도록 서해를 못 가본 터라 이날 세 번째 보는 서해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해수욕 인파는 줄어들고 조개잡이 통을 들고 해변을 누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야호! 아이들의 모래 놀이 장난감 통과 삽을 들고 우리도 물 빠진 모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크진 않지만 손 한 마디 정도의 조개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여기 조개 밭 맞네 맞아! 꽤 많이 잡았다. 하지만 맛조개는 잡지 못했다. 펄이 나왔을 때는 저녁 7시였고, 맨손으로 또는 아이들 모래 장난감으로는 도저히 팔 수 없었다. 그래도 수북한 조개를 보고 아이들은 맛조개를 잊은 것 같았다. 이제 이 조개들을 집까지 싱싱하게 들고 가서 맛있게 요리해 먹는 일만 남았다. 이 조개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음식 쓰레기까지 만들게 된다면 정말 이번 여행 패배의 정점을 찍을 것 같았다.

 


 서해의 멋진 일몰까지 구경하고는 어둑해져 정리를 서둘렀다. 나는 아이 둘을 샤워장으로 데려가 씻기고 남편은 펼쳐놓은 짐을 정리했다. 그런데 차에 갔더니 남편이 조개 보관 통을 하나 샀다며 보여주는데... 띠로리, 플라스틱 담금병이었다. 하긴 뚜껑 없는 장난감에 바닷물과 조개들을 담아 3시간 넘게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기필코 이 조개들을 맛있게 요리해 먹으리라 의지가 다시 솟아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해감 방법을 열심히 검색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난 아직 조개들은 냉장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맛있는 봉골레 스파게티로 정했다.

 



 여행을 마치며 다음 여행을 위해 준비할 것들이 선명해졌다. 그건 바로 나의 반려자를 설득하여 행동에 동참하게 하는 일과 그것을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에게 지구의 아픔을 가르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지. 딸이 없는 엄마의 작은 로망은 아들들을 나의 여행 메이트, 독서 메이트로 키우는 것인데(쓰고 나니 작은 건 아닌 것 같다), 나중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비치코밍도 하고 산책하며 줍깅도 실천하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한다. 엄마에게 환경 보호 제대로 하라며 잔소리해 줄 아들들로 자라주기를 부족한 엄마는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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