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뭔가를 쓰는 삶을 살았다. 힘들 때마다 일기를 썼고 책을 읽고 나면 독서 기록을 남겼다. 좋은 구절들을 필사하고 성경을 필사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육아일기를 썼다. 적어둔 것을 자주 들여다보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적고 싶고 적으려 하는 것일까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고민하는 틈에 나는 또다시 적고 또 적었다. 사실 쓰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마냥 재미있는 건 아니었는데, 가까운 사람 중에서는 이 쓰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SNS를 시작했고 많은 책 친구들을 만나 소통했다.
교사라면 당연히 책을 좋아하고 자기 계발에 열심인 것이 자칫 따분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싫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되고 배우는 것이 좋아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인데 이 정체성이 어디 가겠나. 지금은 내가 좋아서, 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행복해서 글을 읽고 쓴다. 아마 손가락 근육 힘이 남아있는 한은 죽을 때까지 쓸 것이다.
그러던 중 교단일기클럽 공지를 본 건 마치 운명 같았다. 게다가 환경 챌린지라니? 고민한 시간은 찰나였지만 아뿔싸! 벌써 인원이 마감되었던 것.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싶어 댓글을 남겼고 마침 취소한 선생님이 계셔 정말 운 좋게 막차를 타고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작가로서 살아온 3주가 지났다. 마치 진짜 작가가 된 듯한 기분으로 마감의 압박감도 살짝 느껴가며 기분 좋은 고통 속에 보낸 것 같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제목이었다.
하지만 가장 신이 났던 건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이 쓰신 글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잘 쓰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리고 정말 환경을 생각하고 제대로 실천하려는 분들도 많구나!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모순적인 현실 속에서 혼자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걱정하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더 유난스러우면 어때! 하는 당돌한 자신감마저 얻었다. 이제 막 실천을 시작하시는 분들께는 동지애를,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르신 분들께는 존경심을, 그리고 이 모든 분들께 불타오르는 전우애를 느꼈던 정말 뜻깊은 시간들이었다. 사실 방학을 맞아 한가득 쌓은 책탑은 반의반도 읽어내지 못했지만, 내 안에 더 소중한 것들을 쌓았음은 분명하다.
오늘 책 『긴긴밤』을 읽었다. 지구 상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그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긴긴밤을 함께 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처음에 코끼리 고아원의 코끼리들 틈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지만 곧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모험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내와 딸이라는 가족을 얻고 다른 동물 친구들도 만난다. 하지만 선택의 대가는 참으로 힘겨웠다. 인간 밀렵꾼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전쟁으로 인해 친구들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든은 그런 인간들에게 복수하기보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택하고, 태어난 어린 펭귄에게도 바다로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품어주며 사랑을 전한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서로가 기댈 수 있는 작은 피난처가 되어주며 연대의 힘을 이야기한다.
연대. 그렇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삶의 큰 방향성과 목적이 됨을 느낀다. 지성 공동체는 힘이 있다고 늘 생각하며 산다. 이번 챌린지에서 마음속에 가장 힘 있게 와닿은 지점이 아닐까 싶다. 혼자서는 어려운 것도 함께라면 어렵지 않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는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로서 서로 속도는 다르더라도 방향은 한 곳을 향하고 흔들리지 않게 서로 보듬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면 참 좋겠다. 책 『긴긴밤』의 마지막 문단으로 3주 여정의 마침표를 찍으련다.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우리 결코 잡은 손 놓지 말아요.
함께 해요.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서 교단일기클럽 1기 환경 글쓰기 챌린지로 작성 연재했던 14편의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