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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Nov 19. 2021

교실에서도 자꾸만 엄마 마음이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출산하고 복직한 후로는 반 아이들의 말 중에 그냥 듣고 넘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동생 괴롭히는 내용으로 적어도 돼요?"

"오빠가 계속 장난치고 놀려서 너무 싫어요."

"언니랑 싸웠어요. 진짜 짜증 나요!"


그때마다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했는데 요즘엔 자꾸만 사설이 붙는다.


"너희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형제들 밖에 안 남는데. 그러니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그러라고 형제들 낳아주신 건데 자꾸 싸우면 너무 속상하실 것 같아."


그러면 부모님 돌아가시는 건 너무 싫다고 한바탕 난리가 난다.


"에이 선생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무섭잖아요!"


그러면 부모님 속 썩이지 말아야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걸리지만 참는다. 그런데 부모님이 더 속상해하실 만한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선생님, ○○이 또 안 와요? 아, 부럽다. 나도 아팠으면 좋겠다."


그냥 단지 학교 수업이 듣기 싫다는 투정일 텐데도 자꾸만 엄마 마음이 되어 그런 말 하지 말라는 잔소리가 나간다.


"아프면 안 돼 얘들아. 건강한 게 최고야." 하다가

"으이그, 한 번 세게 아파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는 소리까지 나온다.


코로나 이후로 '건강상태 자가진단'이란 앱이 생겼는데, 매일 열과 호흡기 증상이 있는지, 가족 중 코로나 검사 결과 대기자가 있는지, 자가 격리자가 있는지를 체크한다. 하나라도 '예'가 되면 등교중지라고 뜨고 학교를 나올 수 없다. (교사도 출근을 할 수 없다) 그래도 출석 인정 결석이라 결석은 아니다.


반에 호흡기가 약해 찬 바람만 불면 수시로 열이 오르는 아이가 있다. 그런데 코로나가 아니라는 확증은 될 수 없으니 벌써 등교를 못 한 날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수업 중에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체온을 재 보면 또 37.5도를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조퇴도 많이 했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은 철없이 부럽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다. 막상 당사자 아이는 또 집에 가야 한다며 툴툴대고 있는데도 눈치 없이 좋겠다, 부럽다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참 답답하다.


그런데 하루는 다른 아이가 인후통으로 며칠 결석을 했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묻는다.


"○○이 왜 안 왔어요? 어디 아파요?"


예전 같으면 아픈 친구의 빠른 쾌유를 빌어주자 싶어 어디가 아픈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요즘은 아픈 게 부럽다는 말까지 튀어나오니 말을 안 하고 싶다. 그래서 입 꾹 닫고 있으면 기어이 누군가는 왜 결석했냐고 물어온다. 하루 종일 돌아가며 계속될 질문이기에 할 수 없이 대답을 해 주면 늘 그렇듯 또 좋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아이가 하는 말이 가슴에 쿵 박혔다.


"나는 죽을병에 걸렸으면 좋겠다. 계속 학교 안 나오게."


뭐라고? 이 정도면 내 귀를 의심하고 싶어 진다. 아이고 두야 소리가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만약 내 아들이 나중에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일 것 같기에.


"야, 그건 아니지!" 하는 다른 친구들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게다가 지난주 유방 조직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이라 계속 암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내 아이들을 두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싸우고 있던 중이어서 더 쉽게 넘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죽는다는 말이 함부로 대해지는 순간 여러 복합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뇌리에 뭔가가 번쩍 했다. 정말 죽을병에 걸린 친구를 잃었던 기억이다. 28년 전, 마침 지금 아이들과 같은 4학년 때의 일이다. 같은 반 남학생 중 한 명이 골수암에 걸렸다고 했다. 항암 치료로 계속 학교를 못 나오는 친구네 집에 선생님, 친구들과 찾아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교실 책상 위에 놓아진 국화 꽃다발까지 선명히.. 그러니 다시 진지 모드가 되어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딱 4학년 때 지금 이 학교에서 정말로 같은 반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었어."


그랬더니 아이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또 사설이 붙는다.


"그러니까 죽는다는 말은 정말 함부로 하면 안 돼. 사람은 언제 죽을지 절대 알 수 없어. 너희들 부모님 돌아가시는 이야기 하면 무섭다고 싫다고 했지? 그런데 우리가 부모님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어. 그건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절대로 죽는다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겨우 말을 이었다. 갑자기 숙연해지는 교실 분위기가 사뭇 낯설다. 투정을 투정으로 받아주고 그래서 힘들겠다 공감의 말을 해 주면 될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자꾸 학교에서도 엄마 마음이 된다. 엄마는 자식이 아프면 제일 힘들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싶다. 자식을 두고 먼저 죽는 것도 무섭다. 그런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이라면.. 생각조차 너무 고통스러워 할 수가 없다.


얘들아, 우리 아프지 말자.

건강한 것에 감사하자.

항상 건강하자.


봄날의 싱그러운 너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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