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잘 때 침대에 엎드려 책 읽는 걸 즐긴다. 그날도 아이들 겨우 재우고 책을 읽으려 엎드렸다. 그런데 오른쪽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멍울이 만져지고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친구들은 생리할 때가 되면 가슴이 뭉칠 수 있다고 별일 아닐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잠깐은 안심했다. 그런데 멍울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느낌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반 아이들 하교하고 당일 초음파를 볼 수 있는 곳을 급하게 수소문해 둘째를 낳았던 산부인과에 급히 가게 되었다. 아프면 빨리빨리 와야지, 금요일 퇴근할 때 다 되어서 오면 어떡하느냐고 호통을 치시던 담당 의사 선생님.. 저도 조퇴하고 겨우 온 거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
"안 되겠다. 조직 검사해 봐야겠어."
이제까지 조직 검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초음파만 보면 되겠지 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갑자기 마취 주사기와 조직 검사하는 커다란 바늘을 꺼내느라 분주한 간호사 옆에서 덜덜 떨고만 있었다. 간호사 한 분이 더 왔고 꽉 잡으라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 내 반대쪽 가슴을 꾹꾹 눌렀다. 하나, 둘, 셋! 샷! 무슨 총 쏘는 소리와 함께 가슴으로 뭔가가 찌르고 나가는 느낌이 무섭고도 아팠다. 겁이 나고 너무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간호사 분이 다리를 토닥토닥해주셨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다고 했고 따로 연락이 없으면 꼭 연락을 달라는 말씀을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은 극한의 공포와 싸웠다. '암이면 어떡하지? 아이들 두고 죽을 수는 없는데 어쩌지?' 매일매일 걱정하면서도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아이들과 놀아주고 출근해서는 평소처럼 수업을 했다. 자려고 누우니 그제야 마음이 풀려 눈물이 흘렀다. 검사하고 그다음 주 목요일에 결과가 나왔으니 내일 방문하라는 전화가 왔다. 보호자와 같이 오라는 말은 없어서 심각하지는 않구나 일단 안심했다.
결과는 이름 모를 염증이라고 했다. 염증? 그냥 상처가 나서 곪는 것이 염증 아니었던가? 일단 암이 아니라니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항생제 5일 치를 처방받았는데 선생님은 절개를 해서 속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고 다른 외과를 가보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다른 외과를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잘 본다는 대학병원은 당장 진료가 불가능하고 초음파는 최소한 다섯 달은 기다려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름 난 개인병원을 위주로 알아보았다. 진료 기록을 받아 가려고 초진을 받은 병원에 한 번 더 들렀는데 항생제도 떨어졌고 해서 혹시나 싶어 다시 진료를 받았다. 그랬더니 또 초음파를 보자고 하시는 선생님. 그러더니 고름을 직접 빼 보시겠다며 마취도 없이 가슴에 주사기를 찔렀고 아주 조금 누런 고름이 나왔다. 예고도 없이 들쑤시는 바늘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겨우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와 저녁 내도록 끙끙 앓았다.
다시 옮긴 개인 병원도 별 수는 없었다. 만져보시더니 그냥 허허 웃으셨다. 봐달라면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할 수는 있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계속 검사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허탈했다. 암이 아니어서 감사했지만 그래도 치료는 제대로 받아야 하니 병명이라도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심지어 피부가 빨갛게 변하고 살짝 붓기 시작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아파서 브래지어도 못 입고 조금 넉넉한 브라탑을 입고 출근했다. 아이들을 제대로 안을 수도 없었다. 가까이 오는 아이들을 뿌리쳐야 하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구미에 있는 대학 병원, 대구 대학 병원을 모두 예약해놓고 기다렸다.
구미에 있는 병원을 가려고 했던 날, 마침 둘째 화염상모반 레이저 수술이 일주일 당겨 잡혔다. 가족돌봄휴가를 쓰고 남편과 같이 병원에 갔다. 그런데 내가 자꾸 아파하니 남편이 큰 병원 왔으니 응급실이라도 가 보라고 했다. 기다리면 뭐하겠나 싶어 아이는 남편에게 맡기고 응급실에 갔다. 그런데 정식으로 응급실에 들어가기 전에 위중도를 파악하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초진 기록지와 초음파 사진을 들고 담당 선생님께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당장 본원에 있는 유방외과 교수님께 외래 진료를 볼 수 있는지 알아봐 주셨는데 그날은 초음파 진료만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여기 있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다른 병원을 추천해주셨는데, 바로 맞은편에 있어 늘 보던 병원이 웬만한 대학 병원보다 유방, 갑상선 쪽으로는 진료를 잘 본다는 것이다. 대학 병원에서 추천을 해 주실 정도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가 마취를 깨고 회복하는 시간 동안 충분히 진료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전화를 하고 오전 빈 시간에 예약을 잡았다.
초진 기록지를 보시던 선생님은 염증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다른 염증은 항생제 약 처방으로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육아종성 유선염'이라는 염증은 치료법이 다르고 재발도 잘해서 치료 기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염증인지를 알기 위해 다시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한 번 해보았기에 말씀만 들어도 공포에 휩싸였다. 마취 주사를 놓았지만 그래도 아팠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마취가 풀리면서 최고의 고통을 느꼈다. 그래도 아가 밥은 먹여야 했기에 죽집에 들러 겨우 죽 한 그릇을 먹고 집에 와서 곧바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결과는 이틀 뒤에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걸린 염증이 바로 육아종성 유선염이었다. 범위가 조금 넓기 때문에 절개해서 수술을 하면 가슴 모양이 너무 변할 것 같다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써서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수술 일정을 잡게 되지 않을까 했던 진료에서 또다시 가슴에 주사를 맞았다. 그래도 이번엔 바늘이 얇아 크게 아프진 않았다. 수액을 하나 더 맞으며 누워서 검색을 해 보았다. 자가 면역에 관련된 병이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자기 몸에 생기는 이상 반응들이 왜 생기는지 원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을까.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10월 초에 남편과 아주 크게 싸웠었다. 항상 싸우면 이혼이라는 최악의 생각으로 치닫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실행으로 옮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혼 서류 접수 방법이나 양육권, 재산권 분할과 같은 직접적인 방법까지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밤마다 누워서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면 어떻게 될까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다. 그랬더니 극도의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확실치는 않아도 염증이 발생한 원인의 절반은 이 싸움에 지분이 있는 것 같았다. 할 말을 못 하고 자꾸만 속으로 삼켰다. 내지르고 싶어도 아이들을 보며 참았고 정말 참을 수가 없을 때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답장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속마음을 털어내고 글로라도 내질러야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번에 병 하나를 더 얻고 보니 참는 게 정말 안 좋다는 결과에 이르렀다. 사람 성격이 한순간에 변할 수는 없다. 그래도 조금은 남편 눈치를 덜 보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이랑 집에 있는 시간에 카페 다녀온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오늘은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저녁엔 자기가 나가야겠다는 남편. 그래서 협상 끝에 내가 저녁 시간 전에 나가고 남편이 아이들 잘 준비까지 해주고 나가기로 했다. 그래도 많은 발전이다. 이런 협상을 해내다니.
즐겁게 살아야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다 풀어내야지. 많이 징징대야지. 완벽한 척 잘하는 척만 하지 말고 자주 도와달라고 말해야지. 소소한 행복을 누려야지.
우유 금지령을 선고 받으니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아메리카노 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 그래서 와플 하나 추가요.
덧. 앞으로 육아종성 유선염 치료 과정을 올리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흔한 병은 아니라 아직까진 정보가 부족하거든요. 서로의 정보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