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아이들 아침밥을 차렸다

메뉴 추천도 좋지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이 더 듣고 싶어요.

by 초록빛보라

출근하자마자 교무실에 들어가 텀블러에 원두커피를 담고 따뜻한 물을 넣는다. 향 한번 그윽하게 맡고서 커피 한 모금을 살짝 마시는 건 하루를 야무지게 시작해보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다. 겨우 지각을 면한 날은 조금 더 여유 있게 향을 맡는데 갑자기 옆에 계신 선생님이 물으신다.


"아침 먹었어요?"


나는 과일 조금이랑 식빵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어 물으셨다.


"애들은?"


애들도 같이 빵이랑 과일, 우유를 먹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밥을 먹지 않느냐고 하셨다.


"첫째가 밥을 안 좋아해서요. 국을 잘 안 먹어서 그때부터 빵으로만 준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아침에 밥을 주지 않는 변명을 계속 늘어놓고야 말았다. 듣던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하는데... 라며 말 끝을 흐리며 한 말씀 더 하셨지만 결국 그 말 한마디는 내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박혔다. 빵을 주면서도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없진 않았기에, 남편이 했다면 부부싸움이었을 말을 오히려 제삼자가 해주니 감사하다고 느끼며 앞으로 아침엔 꼭 밥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주먹밥 외에는 아침으로 밥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작년 봄쯤부터 그랬고 2학기에 복직을 하고 난 뒤로는 8시에 나서야 하는데 밥을 차릴 시간이 어디 있냐며 빵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진심 어린 자기 합리화.


남편은 아침을 잘 먹지 않고 나는 하루 세 끼 모두 밥을 먹기는 싫은 사람인지라 아침 한 끼 정도는 빵으로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빵을 좋아하는 첫째의 입맛도 한 몫했다. 늘 토스트 타령을 하는 녀석이다. 요즘은 아예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뭐 먹어요?" 하고 미리 먹을 걸 다짐받는다. 뭘 먹일지 매번 고민인 나로서는 메뉴를 정해주는 건 오히려 고마운 부분이다. 그런데 밥을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또 문제는 토스트를 만들면 둘째가 항상 먹지 않고 남긴다는 것이다. 둘째는 빵보다는 시리얼을 좋아하는데 반대로 첫째는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면 눅눅해지는 것이 싫다고 안 먹는다. 둘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메뉴 찾기란 정말 쉽지 않다. 키우는 집에서 대부분 겪는 일이라는데, 정말 어찌 이다지도 다른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바로 다음 날부터 아침으로 무엇을 줄지 고민에 휩싸였다. 문득 이틀 전 먹고 남겨놓은 카레가 떠올랐다. 만족스러운 한 그릇 음식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렸다. 엄밀히 따지면 복직 후 처음이라 하겠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그다음 날은 사골 만둣국으로 정했다. 퇴근길에 포장 사골국물을 샀다. 휘리릭 끓이기 좋았고 아이들도 그럭저럭(이라 쓰고 꾸역꾸역) 잘 먹었다.

20211215_075855.jpg 카레를 남을 만큼 만들었던 이틀 전의 나를 칭찬하며 차린 아침밥


포장만 뜯어서 먹으면 되는 빵을 먹다 토스트를 만들어주는 날에는 내가 얼마나 바쁜데 이것도 만들어준다며 생색도 냈었다. 그런데 겨우 이틀 아침 밥상을 차리고 나서는 그다음 날 바로 밥의 세계에서 도피하듯 빵의 세계로 탈출해 감사한 마음으로 토스트를 만들었다.


겨우 이틀이지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아침 메뉴 선택이 저녁 메뉴 선택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저녁은 어쨌든 제대로 된 끼니 같은 느낌이 있어서 밑반찬도 여러 가지에 국도 곁들이고 고기나 생선을 꼭 준비하기 때문에 크게 투정 없이 먹이기가 좋다. 그런데 아침은 사정이 다르다. 저녁엔 식판을 들고 국을 호로록 마시던 둘째도 아침에 국을 주면 뜨는 둥 마는 둥이다. 일부러 조금 일찍 깨워 놀리다가 먹여도 크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 하다가도 퇴근 직전부터는 저녁 메뉴 고민 시작에, 집에 들어가는 길 마트에서 무얼 살까 매일 고민하던 나는 이제 더 심각한 아침 메뉴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아직 아침밥 차린 지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금세 의욕이 사그라들고 있다. 주말엔 간장계란밥과 김과 소시지의 밥상 차림(나름의 기대를 걸었던 메뉴)에서도 밥을 남기는 아이들에게는 아침에 먹는 밥이 정말 넘기 힘든 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원 시간이 휴직 때처럼 조금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라도 먹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니 빨리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자꾸만 채근을 하게 된다. 첫 아침으로 카레를 차리며 느꼈던 뿌듯함이 점점 이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20211218_094236.jpg 첫째 No소스파 vs 둘째 소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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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식사 문제는 모든 부모, 특히 엄마들의 주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어디 내 새끼 입에 좋은 것 넣어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메뉴 고민을 시작하고 나니 평소보다 마음이 조금 힘들어진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이만큼 준비했는데 너희들은 왜 맛있게 싹싹 비워주지 않는 거냐는 원망도 조금은 생겨났다. 점심, 저녁만 보면 정말 크게 나무랄 데 없는 너희들이었는데, 아침에 밥 먹이기 미션이 생기는 순간 서운함이 하나 둘 쌓인다. 먹이기 힘든 다른 엄마들의 고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밥이 조금 더 영양가가 높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몸의 영양을 높이자고 관계의 영양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다시 주저함이 생겨난다.


처음에 들었던 밥을 먹이라는 말은 남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갈등 없이 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며 효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할수록 '왜 엄마가 된 지 16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나만 이런 고민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가?'라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출근 준비하기도 바쁜 시간에 겨우 차려낸 아침상을 맛깔나게 받아 들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처음엔 적당한 아침 메뉴를 추천받아볼까 했던 마음도 결국은 옅어지고, 지금은 '빵이라도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어. 엄마가 안 힘들고 행복해야지.'라는 말이 듣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교육을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교육적 신념으로 절대 다른 부모들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지 해놓고는, 밥 한 숟갈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고 있는 나를 보니 그제야 아차 싶다. 잘하고 있는 다른 부모들과 나를 절대 비교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 일단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오늘 아침 메뉴는 선물 받은 도넛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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