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고백받으려다 동심 고백받은 이야기
바쁘고 정신없는 3월도 교육과정을 마무리 짓고 학부모 상담을 하고 교육과정 설명회를 하고 나면 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된다. 그때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보면 고운 자태의 분홍 벚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며 마음을 간질인다. 벚꽃이 피면 어김없이 학급 단체 사진을 찍는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돌아가며 결석을 하는 바람에 꽃잎이 지기 전 겨우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마스크 착용도 자율이 된 만큼 코로나가 많이 잠잠해졌으니 단체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1학년의 교실은 전원 출석이 쉽지 않다는 걸 미처 몰랐다. 아이가 자주 아프고 또 자주 다치며 가족 체험학습을 신청하여 결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두가 출석하길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벚꽃잎들은 무르익어갔다. 벚꽃이 절정에 이르고 초록잎이 하나 둘 늘어나는 걸 보니 애가 탔지만 미리 찍지 못한 나를 탓하는 수밖에. 월, 화 이틀 동안 가족체험학습을 신청한 가족이 있어 수요일에는 꼭 사진을 찍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그러나 준비한 수업이 너무나 소중하여 타이밍을 놓쳐버린 나는 결국 목요일로 사진 찍기를 또다시 미루었는데, 일이라는 게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은 5교시였는데 점심을 먹고 교실에 올라와 업무 처리를 하는 중에 갑자기 지한이가 울상이 되어 교실로 들어왔다. 사정을 물으니 놀이터에서 놀다가 벌에 쏘였다고 했다. 손목을 보니 붉게 부어있는 부분이 두 군데나 있어 급히 보건실로 데리고 갔다. 더 놀라운 건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부분 중에 쏘인 자국이 두 군데나 더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할 수 있으니 바로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하교 조치를 하게 되었는데, 정신없이 아이를 보내고 나니 오늘 또 단체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현실 앞에 후회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1교시에 미리 찍을 걸. 역시 마음먹었을 때 즉시 해야 되는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들 하교 후 지한이 부모님께 연락드리니 치료는 잘 받았고 내일은 등교할 수 있다고 하셨다.
벌이라는 동물은 상대방을 침으로 공격하고 나면 자신은 죽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래서 건드리지 않으면 굳이 사람을 향해 일부러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왔다. 그런데 네 번이나 쏘일 정도면 벌을 심히 기분 나쁘게 괴롭혔을 것이란 혼자만의 결론에 다다랐고 몇몇 아이들도 벌한테로 돌을 던진 아이가 있다고 실토를 했다. 확실한 심정적 결론을 얻은 나에게 다음 날 지한이는 또 놀이터에 가도 되냐고 물어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추궁 섞인 질문을 시작했다.
“지한아, 혹시 어제 벌한테 돌 던진 적 있어?”
“아니요!”
꽤 당당한 태도에 요 녀석 봐라? 싶은 마음으로 또다시 물었다.
“그런데 벌이 왜 우리 지한이를 아프게 했을까?”
그랬더니 세상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제가 너무 예쁜 색깔 옷을 입어서 그래요.”
질문하기 전 나는 꼭 이실직고를 하게 만들리라는 마음이었는데,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범행 고백을 받아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새롭게 엄마 미소가 장전되어버렸다. 내가 졌다. 지한이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그런데 어쩌지? 오늘도 지한이 입은 옷이 너무 예쁜 색깔 옷인 걸!”
이번에는 지한이가 씨익 웃는다.
“놀이터에 가도 되는데 벌은 꼭 조심해야 해. 알았지?”
이미 나가는 문 쪽으로 종종 뒷걸음질을 치며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 쉬는 시간이 끝나면 다시 수업 시간이 되었다는 것에 화가 나 종종 “악!”하고 소리를 지르던 지한이였다. 정해진 수업 시간은 악을 쓰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자주 화를 냈었는데, 그런 너에게 벌침 네 방이 대수랴. 밥을 최대한 빨리 먹으면 1, 2, 3교시를 마치고 얻었던 30분의 쉬는 시간보다 더 많은 40~50분의 놀이 시간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다. 나를 향한 지한이의 미소가 벌 정도는 놀이터를 포기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당당한 선언처럼 보인다. 미소 속에 담긴 당찬 결의를 지한이의 눈동자에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