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빛보라 Nov 26. 2023

어린이는 눈물을 먹고 자란다

울보의 성장기

입학식 바로 다음 날, 키대로 줄을 세워서 자리를 정해주고 자기 물건 정리를 시켰는데 갑자기 맨 앞 줄에 앉은 서은이가 울기 시작했다. 바로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흐느껴 울었는데, 보자마자 '혹시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나? 어디가 불편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더니 도리질을 한다. 그럼 친구가 기분 나쁘게 했냐고 물어도 도리도리, 엄마 보고 싶냐 해도 도리도리. 진정되고 이야기하자고 다른 애들 챙겨주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울었어?”

그랬더니 대답이 명언이다.

“집에 가고 싶은데 못 가.”

속으로는 너무 웃기고 귀여웠는데 차분하게 달래고 설명해주었다.

“유치원에서는 어떻게 했어? 학교도 마찬가지야. 단, 너무 아파서 공부를 할 수 없을 때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만 집에 갈 수 있어.”

라고 알려주었다.

끄덕끄덕 하고는 조금 뒤에 울음을 그쳤다. 안도의 한숨 발사. 비록 30분 치의 눈물이 흘렀지만. 휴.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날, 3교시 수학 시간 중간에 서은이가 또 울음을 터뜨렸다. 안 그쳐서 쉬는 시간에도 말 못 하고 4교시 만들기 활동 시작하며 겨우 울음을 그쳤는데 이유는 5교시 마치고 말하고 싶다고 하길래 기다렸더니 결국은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왜 가고 싶었어?”

“힘들어서요.”

“뭐가 힘들었는데?”

“수학에 모양 찾아서 색깔 동그라미 하는 거요.”

대답을 듣고 나니 아이가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게 힘들었어? 그렇구나. 그런데 오늘은 모양을 처음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게 당연해. 그리고 틀려도 다시 고치면 되니까 괜찮아.”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서은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울음을 울었을까 싶으니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고 아이 스스로의 마음 회복을 위해서도 그런 성향이 조금 누그러졌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방과후 수업에 조금 늦었기에 어머니께 확인 전화가 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감사하다고 집에서 이야기해보겠다고 하셨다. 밀가루, 유제품 알러지가 심해 식단 관리도 엄청 힘드실 것 같았는데 여러 모로 아이 키우기는 정말 쉽지 않다. 어머니, 사실 담임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습니다.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요.


이후로도 서은이는 종종 울었다. 인사만 하면 하교하는 종례 시간 직전에 울기 시작한 날도 있었다. 집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우는지 궁금했으나 혹시나 아픈 마음을 더 건드려 대답을 안 할까 봐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고 했더니 10분 넘게 울고는 겨우 진정했다.

“서은아, 어디 불편해? 왜 울었어?”

했더니 훌쩍이며 겨우 운을 뗀다.

“방과후 미술 하기 싫은데 엄마가 계속하라고 해요.”

말하면서 또 서러운지 훌쩍거림이 더 큰 울음이 된다. 하지만 싫다고 포기하도록 둘 수 없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기에 다시금 토닥였다.

“서은아, 미술 수업이 많이 힘들구나. 그런데 뭐든지 처음엔 힘이 든 게 당연해. 선생님이 서은이 엄마였어도 딸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 같아. 서은이가 우리 반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어린이로 뽑히는 이유도 모두 서은이의 노력이 있어서 그런 거야. 선생님은 서은이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아보는 게 어떨까?”

긍정의 끄덕거림과 함께 울음도 그쳤다.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꼭 잡은 서은이를 방과후 교실로 데려다주고 미술 선생님께 텔레파시를 보냈다.

‘선생님, 우리 서은이 미술 하기 힘들다고 울었는데 오늘 수업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 텔레파시 받으셨죠?


다른 아이들 기준으로 꽤 자주 울던 서은이가 2학기 들어서는 딱 한 번 울었는데, 이번엔 우는 이유가 너무도 뻔하여 서은이가 운다는 아이들의 말에도 알겠다고 한 번만 말하고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금세 울음을 그친 서은이. 정말 기특하고 장하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것 같다. 학년 말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제 더이상 우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참 대견하고 기특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말 에피소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